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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방랑객 Jan 02. 2020

산인선에서 가장 열차 구경하기 힘든 구간

산인선(山陰線) 두 번째 이야기

  어느 노선이 되었든 간에 전구간을 운행하는 열차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구간에 따라 열차의 빈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열차 빈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많고 적음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인 열차 운행량이 많다 보니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지만, 열차 빈도가 낮은 시골 철도라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인선은 도시와 시골을 아우르며 운행하는 노선이기에, 열차 빈도가 구간에 따라 눈에 띌 정도로 극심하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루 10 편성도 보기 힘들 정도로 열차가 다니지 않고 있는 구간도 있는데, 이 구간은 열차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일이 될 정도로 시간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다.


산인선 가운데 가장 열차 빈도가 낮은 구간인 마스다~나가토시 구간.


  야마구치선이 분기하는 마스다역 그리고 미네선이 분기하는 나가토시역. 이 구간을 이어주는 산인선은 다른 산인선 구간에 비해 열차를 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마스다에서 나가토시까지 전구간 운행하는 열차의 빈도는 더욱 낮아서, 이 두 역을 오가는 것은 하루에 다섯 편 정도 겨우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인접 구간과 비교해도 차이가 느껴진다.


  이 노선과 인접해있는 산인선 역시 열차 빈도가 높은 구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열차가 더 적게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마스다에서 나가토시 구간. 특급에 쾌속열차까지 있는 마스다역 반대편(이즈모시 방면) 구간은 보통열차만 다니는 나가토시 방면 열차들과 너무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그나마 나가토시역은 양방향 모두 열차 빈도가 낮다 보니, 마스다에서 나가토시 구간이 특별히 열차 빈도가 낮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가토시역을 출발한 열차의 절반 정도는 중간에 자리한 히가시하기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로, 마스다역까지 이어지는 열차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행선지 표기에도 히가시하기와 마스다가 같이 적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잘 정돈된 승강장이 금방이라도 누가 다녀간 것 같다.


  열차 빈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이 구간은 사람의 손길이 오히려 더 많이 닿은 것처럼 잘 정돈된 역들이 이어진다. 열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데, 운행하는 열차에 탑승한 승객도 적은 구간. 하지만 마을의 얼굴인 역은 항상 많은 승객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편하게 역을 이용할 수 있게 정돈된 모습이 시골역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구간에서 내리는 승객은 한 두 명에 불과한 역이 대부분이다.


  승강장만 보면 많은 승객이 승하차를 할 것 같은 역들도, 한 두 명 내리면 많이 내린다고 느낄 정도로 승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열차도 몇 대 다니지 않는데 승객도 한 두 명에 불과한 것을 보면, 하루에 10명은 이용하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 이러다 또 폐역의 압박이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시골역은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교행 장면.


  열차 빈도가 낮기 때문에 교행은 가뭄에 콩 나듯 극히 보기 드문 장면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구간 자체가 제법 길어서 적어도 한 번은 열차가 서로 마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교행역이라고 해서 승객이 많이 타고 내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설을 갖춰놓은 곳에서 교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간표를 조절한 것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교행 구간이었지만 사용하지 않는 장면.


  하물며 있는 시설도 점점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실정. 그곳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침목과 궤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덮어버릴 듯한 기세다. 이렇게 사람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생명체가 차지하게 된다.


역이 이렇게 가까이 있지만, 승객은 보기 힘들다.


  이 구간은 홋카이도와 같이 광활한 대지의 중간을 통과해서 집 한 채 보기도 힘들 정도의 구간도 아니고 해안가나 산 중턱으로 들어가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역을 통과하는 구간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 근처나 선로 근처에 마을이 제법 형성되어 있는데, 이상하게 사람을 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역에서 계단만 지나도 집이 많이 있는데 역이 이렇게 한산한 것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하기가 어렵다.


군계일학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히가시하기역.


  그런 와중에도 승객이 많은 역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역이 바로 히가시하기역이다. 이 역을 기종착으로 운행하는 열차가 있을 정도니, 마스다~나가토시 구간에서 가장 중요한 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가시하기역은 무인역의 연속인 이 구간에서 유인 역으로 운행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동대구역과 대구역 같은 느낌의 히가시하기역과 하기역.


  히가시하기역의 다음 역은 하기역으로, 히가시하기역이 규모가 있는 역이기 때문에 하기역 역시 규모가 있는 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기역은 의외로 무인역이다. 이는 대구역과 동대구역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대구역도 규모를 더 확장할 수가 없어서 동대구역으로 대구역을 대체하고 있는데, 지금은 대구역보다 동대구역이 훨씬 규모도 크고 정차하는 열차도 많아져서 대구를 대표하는 역이 되었다.

  아마도 히가시하기역도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기역보다 훨씬 규모가 커진 것은 분명했다. 무인역인 하기역은 히가시하기역에서 본모습과 달리 내리는 승객도, 타는 승객도 보기 드문 역이 되었다. 이 역은 그래도 정원과 같이 잘 꾸며놓아서 누군가의 관리는 받는 모양이다.


승객이 많지 않은 역일수록 승객의 편의를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유독 그냥 지나치는 역이 많은 구간. 열차도 많지 않은데 그마저도 타고 내리는 승객이 없다 보니, 히가시하기역과 마스다역 또는 나가토시역을 이어주는 셔틀 구간이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폐역 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시설이라도 유지하는 것은, 단 한 명이라도 이용할 승객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때로는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라고 우산까지 가져다 놓은 이 장면을 통해 도시 역에서 느끼지 못한 따뜻한 정(情)을 느끼게 된다. 집은 있지만 사람은 없는 것 같은 마을을 지나는 산인선. 고령화 사회에 도시 과밀화로 시골은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지금 이 산인선 근처의 마을을 뜻하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따뜻한 정으로 무장된 단정한 무인역의 모습이 너무 어색하기만 하다.


마지막 역이 다가오지만, 내리거나 타는 승객은 없다.


  그렇게 많은 역을 거쳐 나가토시역에 근접한 열차. 그러나 열차 안에 있는 많은 승객들은 중간 역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신호등에 걸린 버스인 듯 중간 역을 하나씩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만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인 듯, 운전사는 이용하지 않는 출입문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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