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야본선 - 왓카나이역
지구는 둥글어서 어느 방향을 가더라도 끝이 없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국가 간 경계가 생기고, 또 지역 간 경계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동서남북 방향의 끝 지점도 만들어졌다. 철도역 역시 마찬가지로, 한 나라에 위치한 역 가운데 딱 4개의 역만 가질 수 있는 상징적인 역이 바로 최극단 역이다.
일본은 크게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오키나와가 빠져있다. 우리나라로 따져보면 한반도와 제주도를 구분하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철도에서는 예전에 국철이었던 JR 노선이 오키나와에 없기 때문에 이 4개 섬에서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키나와와 상관없는 역은 최북단 역과 최동단 역인데, 모두 홋카이도에 위치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번에 살펴볼 역은 최북단 역인 왓카나이역이다. 이 역은 최북단 노선인 소야본선에 속해있는 역인데, 특급열차도 정차하고 항상은 아니지만 역무원도 있는 유인역이다.
앞으로 나올 역들은 이렇게 왓카나이역처럼 최극단 노선의 마지막 역이면서 유인역이거나 특급열차가 정차하는 등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역이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최북단을 독점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 극단에 자리한 역들은 마지막 역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역이 있다.)
일본에서 딱 4개 역만 가질 수 있다는 최극단 역. 그중에서 북쪽에 자리한 역이 바로 이 왓카나이역이다.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승강장에 내리면 바로 이런 글자를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다. 이곳은 북위 45도에 해당하는 고위도 지역으로, 한반도의 가장 북쪽보다도 훨씬 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역임을 알려주는 역명판. 열차를 타고 다른 지역에서 왓카나이역으로 오려면 반드시 미나미왓카나이역을 거쳐야 한다. 이곳의 역 번호는 80번으로, 역 번호가 1번으로 기준이 되는 삿포로역에서 시작해서 80개 역을 거쳐야 도착할 정도로 삿포로에서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역이다.
그런 왓카나이역까지 특급열차도 운행하고 있다. 삿포로에서 출발한 열차가 이곳까지 오려면 5시간 10분가량 소요가 되는데, 그만큼 홋카이도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왓카나이역은 원래 승강장이 2개 있었지만, 역을 개량하면서 1개의 승강장만 가진 역으로 바꾼 상태다. 그러니까 왓카나이역에 들어온 열차가 다시 다른 역으로 출발해야 다음 열차가 왓카나이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다.
왓카나이역이 최북단 노선의 마지막 역이라면 반대편의 최남단 노선의 끝 역은 마쿠라자키역이다. 참고로 마쿠라자키역은 왓카나이역과 달리 최남단 역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왓카나이역을 제외한 나머지 최극단 역은 노선 중간에 위치한 역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최극단 역은 아니더라도 마지막 역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왓카나이시와 마쿠라자키시는 서로 자매결연을 맺었나 보다. 무려 3,100km에 이를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역. 신칸센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하루 만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거리다. 이처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끝이라는 공통분모가 두 도시를 이어준 것도 영토라는 경계가 가져다준 인위적인 산물이 아닌가 싶다.
더 나아갈 수 없는 철도. 여기에는 최남단 역인 니시오야마역이 표기되어 있다. 니시오야마역과 왓카나이역 사이에는 최남단에서 북단을 연결하는 철도가 여기서 끝난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 거리를 가늠해 볼 수 있게 승강장 기둥에는 주요 역과 왓카나이역 간 거리를 따로 표시해놓았다.
여기에 적힌 역들은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역들이다. 우선 왼쪽에 있는 니시오야마역은 앞서 언급한 대로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본토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역이다. 그다음 역인 이부스키역은 특급열차가 정차하는 최남단 역이다. (최남단 유인역은 이부스키역 다음 역인 야마카와역이지만, 여기에는 따로 없었다.)
세 번째 나오는 도쿄역은 일본에서 가장 큰 역이자 중심 역인데, 그곳까지만 해도 무려 1,500km가 넘는 거리다. 다음 나오는 하코다테역은 홋카이도 재래선역 가운데 최남단에 위치한 역이다. 그다음 나오는 삿포로역은 홋카이도의 중심역이다. 여기서도 거의 400km에 육박하는 거리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역이 아사히카와역인데, 왓카나이역이 소속된 소야본선이 시작하는 역이 바로 이 역이다. 그러니까 소야본선의 길이가 260km 정도 된다는 의미다.
왓카나이역은 2011년 4월 이후 위치가 조금 바뀌어서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역 이름 아래에 위치한 출입문에는 궤도 모양의 보도블록이 이어지고 있다. 저 보도블록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 앞서 봤던 최북단 선로 푯말이 등장한다. 딱 4역에서만 볼 수 있는 최극단 역 푯말은 왓카나이역 승강장 끝이자 개찰구로 가는 통로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열차는 다닐 수 없지만, 철도는 더 이어졌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싶었는지 보도블록으로나마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진짜 철도의 끝처럼 노란색 시설물과 함께 침목이 있는 궤도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역의 광장은 이처럼 더 나아가고 싶은 철도의 마음까지 읽어주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왓카나이역의 모습. 크지는 않지만 복합 쇼핑몰과 함께 어우러져서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로 규모가 있는 역이 되었다. 열차가 도착하거나 출발할 때가 아니면 정적이 흐르는 왓카나이역. 그런데 주변 분위기만 보면 마치 승강장이 더 늘어나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