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쿠/호쿠리쿠 신칸센의 그란클라스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다. 가지고 있으면 더 가지고 싶고, 편하고 싶으면 한없이 편하고 싶다. 그래서 지구 상의 다른 생명체와 달리 도구 사용에 더 능숙해진 것 같다. 도구를 사용하면서 좀 더 편한 곳에서 살고, 좀 더 질 좋은 음식을 먹으며, 가기 힘들었던 곳까지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도에서도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볼 수 있다. 처음 철도가 탄생했을 때는 혁명이라는 말이 붙을 만큼 대단한 사건이지만 지금 열차들의 속도에 비해 한없이 느렸다. 그러나 이제는 시속 300km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왔다. 열차 좌석 역시 초창기에는 등받이도 없는 평상 수준의 좌석에서 시작해서 등받이가 나오더니 이제 열차 방향에 따라 의자를 돌릴 수 있고, 또 등받이도 편하게 뒤로 젖혀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더 크고 좋은 의자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안마의자 수준의 최고급 좌석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비행기 1등석의 좌석과 동일한 좌석을 설치한 도호쿠/호쿠리쿠 신칸센의 그란클라스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욕구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 좌석에 앉아보는 순간, 여태까지 편하다고 생각했던 신칸센의 그린샤 좌석마저 잊게 만들 정도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란클라스는 현재 도호쿠 신칸센의 E/H5계 열차 중 10호 차. E/S7계 열차 중 12호 차에 한해 설치되어있다. 열차의 행선지판을 보면 지정석이라는 글자가 있고 그 글자 옆에 G를 형상화한 심벌마크가 있는데, 이 표기가 그란클라스를 의미하는 표기다.
열차를 기다릴 때부터 다른 객차에 오르는 것과 차별을 둔 그란클라스. 승차위치를 살펴보면 다른 곳과 달리 LED 안내판이 별도로 설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판 주변을 보면 색이 조금 다른데 처음부터 이렇게 안내판이 설치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란클라스를 도입하면서 세심한 부분까지 다 신경 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란클라스는 열차의 맨 끝 객차에 연결되어 있는데, 출입문을 들어가는 순간부터 왜 맨 끝에 배치를 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일반적으로 출입문을 거치면 중간에 통로문 하나를 두고 객차와 복도로 나누어지는데, 그란클라스는 복도와 객차 사이에도 또 하나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 통로에는 승무원이 상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여기에 있는 승무원은 오직 그란클라스의 승객을 위해 상주하고 있으며, 뒤에 언급하겠지만 그란클라스 승객은 언제든지 승무원을 호출할 수 있도록 벨이 마련되어 있다. 여태껏 그린샤 좌석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서비스를 그란클라스에 도입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칸센 보통차는 2x3 배열에 20열이나 되는 좌석 배치로 100석의 좌석이 객차 한 칸에 자리하고 있는 반면, 그란클라스는 동일한 객차 한 칸에 18석의 좌석만 있다. 그만큼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것이다. 객차 한 칸에 56석 정도 되는 그린샤와 비교했을 때도 상당히 적은 수치다.
이렇게 소수에게만 허락된 이 공간은 외국인이 패스권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제값을 다 치르고 탑승하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그란클라스는 아무에게나 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좌석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그란클라스는 그린샤보다 더 빨리 만석이 되는 경우가 잦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그린샤와 그란클라스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좌석을 선택하는 모양이다.
비행기의 1등석 좌석을 그대로 옮겨놓은 그란클라스 좌석들. 1열 당 보통차의 2x3 배열보다 2개 좌석이나 더 적게 배치되어 있지만 통로가 상당히 좁게 느껴질 정도로 좌석 자체가 크다. 그란클라스는 총 3종류의 디자인을 볼 수 있는데, 바닥의 카펫을 비롯해서 실내 인테리어가 약간씩 다름을 알 수 있다.
좌석 뒤편 역시 이전 열차들과 달리 등받이 뒤에 또 하나의 등받이가 더 있다. 하나의 좌석이 완전히 독립된 상태로 충분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독립공간은 아니더라도 앞사람이나 옆사람의 방해 없이 자신만의 공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좌석은 거의 침대나 다름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안락한데, 거의 수평에 가까워질 정도로 젖혀지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 앉아있으면 앉는다는 느낌보다 누워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창문이 있는 벽도 다른 좌석에 비해 훨씬 두꺼워서 외부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너무 안락한 공간이어서 그란클래스를 즐기지도 못하고 잠에 빠져드는 점이 한 가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장거리 비행을 해도 피곤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좌석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린샤에 비해서도 좌석 조정장치가 많은 그란클라스 좌석. 버튼 하나로 조절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취향에 맞게 조절할 수 있도록 버튼이 다 나누어져 있다. 많은 버튼 가운데 승무원 호출 버튼(呼出し)이 가장 눈에 띈다. 실제로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면 1분도 되지 않아서 승무원이 바로 응대에 나선다. 그란클라스의 승무원은 이처럼 그란클라스 승객을 위해 항시 대기 중이다. 비행기 1등석을 옮겨 왔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던 서비스였다.
의자 사용법은 별도의 안내 팸플릿이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이 기능을 모두 사용할 승객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과하게 많은 기능들이 최근에 나오는 스마트폰 기능을 연상하게 한다.
비록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이동은 아니지만, 그란클라스에는 각 좌석마다 별도의 실내화를 제공하고 있었다. 구두나 운동화 등 차내에서 신고 있으면 불편한 신발을 대신해서 발이 편안한 실내화를 신고 있으면 온 몸의 긴장도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숙면에 들게 된다. 좌석뿐만 아니라 이 실내화도 분명 짧은 시간이지만 깊은 숙면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란클라스는 신칸센 최초로 기내식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이 도시락은 구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열차 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기내식까지 받으니 정말 비행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도시락은 별 것 없어 보이지만 반찬 종류는 상당히 많다. 그리고 반주로 주는 일본식 소주인 사케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차가운 음료와 따뜻한 음료는 호출하면 언제든지 가져다준다. 음료에 따라 컵이 달라지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열차인 신칸센.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싼 좌석인 그란클라스. 만족을 모르는 사람의 끝없는 욕구가 만든 조합은 과연 어디까지 편해질 수 있을지 기대하게 한 좌석이었다. 과연 이보다 더 좋은 좌석이 등장할 것인지, 또 그때가 되면 그란클라스도 지금처럼 신비로운 좌석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을지 궁금해진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런 그란클라스에 준하는 좌석이 없다. 그러나 승객의 눈높이가 높아진다면 프리미엄 버스처럼 고속철도인 KTX에서도 그란클라스와 같은 좌석이 등장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