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by 거성

<뱀들이 있어>

- 정민철은 티내지 않고 웃으면서 죽을힘을 다해 테니스를 쳤다.

무조건 게임을 이기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민철은 테니스 공이 자신의 코트로 떨어질 때마다 좌절감을 느꼈다.

세상에는 열심히 쫓아다녀도 절대 치지 못할 공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손을 힘껏 뻗고 라켓을 한껏 내밀어도 닿지 못하는 공이 있었다.

정민철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웃지 않으면 패배하는 자신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질 것이었다.


- 정민철은 류영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인지,

김우재를 향한 류영선의 사랑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먼저인지 알 수 없었다.


-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장은 커녕 위로의 단어 하나조차도 찾아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위로에 서툴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김우재를 위로할 만한 말을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애당초 찾을 생각이 없었다는 걸, 정민철은 몇 달 후에야 깨달았다.

김우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위로의 마음이 없는 자신을 들키게 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보트가 가는 곳>

-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설렘에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들어있다.

설레며 고백하는 사람은 앞에 앉은 사람과 겪게 될 수많은 경험을 미리 짐작하고 떠올리며 미리 행복해한다.

막연한 기대는 꿈꾸는 사람의 특권이다.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행복이라는 덩어리의 무게를 미리 재어보는 일, 그게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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