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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기후위기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

Written by 수진

내가 기후위기에 진심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것은 내가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미세먼지가 그득하던 북경의 모습을 보고는 환경을 계속 방치한다면 아마 전 세계가 이처럼 혹은 이보다 더 심한 현실에 마주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기후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낀 것은 아니지만 환경오염의 끝에는 미세먼지와 함께 기후의 문제도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북경에서의 일상은 내가 지금까지 너무도 자연스러워 인식조차 못하던 이 환경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늘은 당연히 푸른색인 줄로만 알았는데 베이징의 하늘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1년 365일 중 360일이 회색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미세먼지가 물러났다 싶으면 날씨가 흐리고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번갈아 찾아왔다. 하루는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무언가를 기념하려는 듯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의 시선 끝에는 푸른색 하늘과 뭉게뭉게 예쁘게 펼쳐진 구름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에 나도 넋이 나간 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은 길에 멈춰 서있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본 날이었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때는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한때는 당연했던 일상 풍경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으로 기념할 정도의 특별한 모습이 된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다.


당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매일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는데 그때는 매일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이 정말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미세먼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기도 했는데 밤마다 시꺼멓게 변해버린 마스크 필터를 볼 때면 차마 마스크를 벗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마스크에서 해방되었고 맑고 푸른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후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집사부일체 타일러 라쉬 편을 보게 되었다. 타일러 라쉬는 산림 파괴로 박쥐와 인간의 서식지간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가 또다시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점, 지금의 추세가 30년 이상 지속되면 부산이 반도가 될 수 있다는 점, 심지어 한국이 침수될 수도 있다는 점 등 환경파괴가 가져올 미래 모습을 알려주었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기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게 되니 기후위기의 문제가 멀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과 함께 집사부일체를 보고 타일러 라쉬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어 그의 저서인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었다. 그는 책이 출간되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출판사에 FSC 인증을 받은 종이를 사용하고 싶다고 요구했는데 ‘비싸다’ 혹은 ‘인쇄 업체에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거절당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일러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게 왜 안될까?’하며 문제의식을 느꼈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업체를 찾아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지금의 시스템을 인식하고 나만의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기후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 미세먼지와 코로나 등을 겪으면서 원치 않은 변화를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보다 푸른 하늘, 마스크 없는 세상, 봄과 가을 등 내가 좋아하는 일상이 사라지는 것이 더 무섭다는 것을 배웠고 아직 희망이 존재하는 지금 내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 알쓸범잡에서 김상욱 교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편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머리에 계속 맴돈다. 나는 확실히 편의를 좇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편리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선택한 불편에서 행복을 느꼈던 때가 많았다. 가까운 거리는 도보로 이동하며 주변의 경치를 천천히 감상하고 배달음식을 시키기보다는 나를 위해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먹었던 것이 오히려 행복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변화에 대응하려는 마음보다 나는 그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불편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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