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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거리로 나선 아이들

Written by 동재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찍은 2019년 5월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학교를 빠지고 광화문 앞에 집결한 청소년들은 뙤약볕에서 3시간 넘도록 구호를 외치고 교육청으로 행진했다. 즐거운 노래들과 함께였지만 한편으론 처절한 광경이었다. 나들이 삼아 취재차 갔던 현장에서 나는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꺼내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들은 고생 끝에 교육청에 도착했지만, 교육청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

기후위기가 청소년과 아이들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이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위협적이다. 기후위기를 막고자 한다면 7년 내에 온실가스를 급격하게 줄여야만 한다. 그 몫은 아이들의 것이다. 기후위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기성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에 비해 아이들에게 앞으로 허용된 온실가스는 지나치게 적다. 아이들이 모든 걸 부담해야 하는 건 기후위기를 막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가 초래할 재난들을 온전히 부딪혀 나가야 하는 건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아이들이다.

기후위기에 대응 못하는 사회는 아이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학교에선 기후위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며, 청소년들은 기후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청소년들이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미래세대’란 이름으로 대통령 앞에서 춤을 추거나, 옆자리에 앉아 같이 박수를 치는 것뿐이다. 들러리로 설 것을 바라는 정부의 손을 뿌리치고 나선 청소년들은 거리에서 ‘과학이 얘기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할 것’을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 못하는 교육은 아이들을 나누고 있다. 2018년 그날의 행진에서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은, 마침 하교 중이었던 다른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행진하는 또래 친구에 대한 비아냥과 비웃음은 학생 개인의 인식이라기보단,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한국 교육의 단면이었다.

청소년이 마주한 기후위기 시대의 불평등은 단편적이지 않고 복잡하며, 뿌리 깊게 고착화되어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활동을 지속하는 청년들의 원동력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일 것이다. 소수의 학생들로 시작한 청소년 기후행동은 소식을 접해 듣고 전국 곳곳에서 모인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 중이다. 오늘도 그들은 거리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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