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마지막. 모두 알다시피 반복이다. 영점 사격 한 번하고 두 번째 했는데도 안 맞으면 어떻게 할까? 다시 한다. 맞을 때까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영점사격만 8번 연속으로 했던 사람이 있었다. 옷사이즈도 마찬가지다. 저번에 샀던 운동화를 토대로 플랫슈즈를 255로 구매했는데 크다면 250으로 다시 사면된다. '아 운동화만 크게 나오나 보네, 참고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1번부터 4번까지 계속해서 반복하면 된다. 이 1번을 빼먹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항상 사람들이 초심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사람이 자연스럽게 급을 나누기 때문이다.
사람이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적어도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당신은 어떤 존재입니까?라는 질문에 직업, 돈, 학벌, 외모 등 행동을 통해서 결과가 나오는 것들의 가치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 존재입니까?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신은 무엇을 통해 가치를 느끼고 있습니까?라고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존재는 가치로써 형성된다. 우리는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존재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동을 통해 결과가 나오는 것들은 판단이 쉽다. 천 원과 천만 원. 무엇이 더 가치가 큰지 노력하지 않아도, 심지어 보고 싶지 않아도 눈에 뻔히 보인다. 학벌도 외모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직업은 시대의 흐름과 문화가 빠르게 변한 덕분에 가치의 변동성이 커서 판단이 쉽지 않지만 등급으로 분류해서 나누는 경우가 많기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언제나 체면치레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비교가 쉽기 때문에 비교를 한다면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은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는 더더욱 비교가 쉽다. 심지어 미국은 잘 사는 지역, 못 사는 지역이 나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비교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수단이 비교의 가치를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는 뭐 그냥 나지'.라고 대답한다. '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물어보면 대부분 조금 생각해 보다 이내 손사래 치고 만다. '나'. 자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그런 질문은 우리에게 쓸데없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등급에 들어가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런 생각은 돈도 나오지 않는데, 쓸데없는 생각만 가득 차게 해서 고통스럽고 괴롭기만 한 정말 하등 쓸데없는 것 중 하나라고 치부된다.
논리적으로 이런 생각은 돈이 나오진 않는다. 게다가 재력과 학벌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무시 안 당해도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스토리에 우리가 열광을 하고, 그들도 그것에 뿌듯함과 가치를 느끼는데 그것이 잘못되었고 돈을 숭배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철없는 동화에 지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열망하고 있는 것들을 평가하는 주체이다. 내가 돈이 많은 것으로 내 가치를 증명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그것이 내 존재의 이유가 된다면,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떤 존재냐 물어봤을 때, 100억대 자산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존재의 평안함을 느낀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이뤘고 내가 생각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내 열망과 목표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면, 그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끝없이 비교할 수밖에 없다. 100억대 자산가가 목표인 사람이 1천만 원의 자산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존재의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500만 원 있는 사람을 보고 조금의 위안을 얻는다. 저 사람들보다는 낫지라는 생각으로 존재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틴다. 이것이 한국에서 비교문화가 없어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우리는 너무 똑똑해서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돈을 벌고 모든 위험에서 벗어난 안정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논리적인 삶의 정답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목표는 애초에 돈, 학벌 같이 보이는 것들이 될 수밖에 없었고, 세상에 나로서 우뚝 설 수 있는 자존감을 나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찔끔씩 먹으며 살아가고, 해낼 수 있다는 연료를 나보다 잘한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꿈꾼다.
그러나 끝없는 비교는 결국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주체적이지 못한 삶이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 맞는 내가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면 평가자는 자신이다. 하지만 비교를 통한 삶의 평가자는 다른 사람이다. 사회에 처음 발을 딛는 순간부터 아득한 은하수를 눈에 그리며 눕는 순간까지 한국인은 남에게 평가를 맡기며 살아간다. 그렇다. 인생 전체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1번의 과정이 필요하다. 남들의 평가는 나를 도와주기 위한 팁일 뿐, 진정 내가 원하는 열망을 이루기 위해 내가 평가해야 하는 그 순간이 더 중요함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모의고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짜는 수능이다. 모의고사는 당신을 도와주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실수는 불안에서 나온다. 남에게 듣는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 더 이상 평가를 남에게 미루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난 뒤에는 다시 관찰해야 한다. 이번에는 내 행동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 첫 번째 때는 내 행동에 대해서 기록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신체적인 것이라면 촬영을, 글과 같은 무형이라면 처음부터 세세하게 본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알려주거나, 감독해 주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계속 체크해야 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 가장 빠른 방법은 시험 평가하는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물론 그 빈도수가 너무 많거나 너무 간단하거나, 그 사람이 너무 바쁘면 자중해야 한다. 평가하는 사람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언제나 감정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관찰한 뒤에 다시 분류를 하는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내 행동의 문제점과 다른 사람들의 팁들에 대해서 분류를 하며 과정마다 내가 깊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에 정리가 되면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듬는 퇴고 작업, 시뮬레이션 그리고 행동, 마음을 비우고, 관찰하고, 정리하고, 다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면 이 이야기는 하나의 조경도가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생겨도 전부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갑자기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돌발상황에서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아니까 문제없이 순서대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일이 걸리는 시간을 알고 있어서 순서대로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작은 디테일도 전부 이유를 이해하고 있어서 몸에 습관처럼 밴다. 이것이 내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된 방법이다.
이 5단계를 통해서 나는 일 잘하는, 실수하지 않는 차분한 사람이 되었다. 물론 한 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칭찬을 들어도 다른 회사 가면 초기화되어서 이마를 탁 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 어떤 새로운 일을 해도 금방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안 산만했고, ADHD는 애들한테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조용한 성인 ADHD라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뭐랄까,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았다. 증상은 전부 맞지만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개념은 아닌데, 본질은 벗어날 수 없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감이 많이 돼서 웃음도 났고 매일매일 했던 어이없는 실수들 덕에 가끔 나는 왜 이럴까, 남들은 안 하는데 왜 나만 이럴까 하는 자책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줬다는 것에 의미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