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가는 것도 아니고, 안 가는 것도 아닌..
초등학교 입학이 코로나19로 계속 미뤄지다가, 드디어 5월 27일 등교가 결정되었다.
학교에서는 등교 전 코로나 예방을 위해 학부모들의 투표로 등교 방식을 결정했다.
1. 전일 등교수업
2. 등교수업(오전) + 온라인수업(오후)
3. 주2회 등교, 주3회 온라인수업
결과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투표한 3번.
이 결과를 보고 나는 머리속에 많은 물음표가 생겼다.
온전한 등교수업도 아니고, 온전한 온라인수업도 아닌 결과.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니고, 안가는 것도 아닌 상황.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학교 입학이 미뤄지면서 아이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고,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는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온종일 아이를 봐주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닐 수 있어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우리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을 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낮 시간에 온라인수업을 실시간으로 챙겨줄 수 없어
집에 돌아온 후 저녁시간에 아이와 함께 인터넷으로 녹화된 수업을 듣고는 했다.
이런 상황에서 27일에 등교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부부는 모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배경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냄으로써 우리 부부가 편해진다는 생각보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부푼 마음과 두려움 마음을 모두 가지고 학교에 갈 생각을 했던 아이에게
‘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이제 조금은 덜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주일에 2일만 등교하고, 3일은 온라인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
아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우리 부모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학년에 입학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부를 하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틀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작은 사회의 배움터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배우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배우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아간다.
어린이집과는 많이 다른 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는 몸으로 체험하며 삶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런 나의 기대는 주 2회 등교가 결정됨으로써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아직 학교를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에게, 학교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2학년이라면 아쉬움이 좀 덜한텐데, 처음 입학하는 해에 이런 일이 생기니 아쉬운 마음이 매우 크다.
이미 결정된 내용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상황을 알기에 무조건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치, 경제, 사회의 전 분야에서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변화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올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편화 된 상황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불편해지는 세상.
어렸을 적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친구와 함께 나눠 먹던 모습이 이제는 비위생적인 모습으로 비춰질까 두렵다.
아이들 책상마다 칸막이가 생기고, 점심시간에는 마주보며 식사하지 못하고, 누군가 재채기를 하거나 열이 나면 코로나로 의심하여 낙인찍히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왕따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이런 상황이 과장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미 여러 기사를 통해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거나 예상되는 모습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친구들과 즐겁게 놀아’라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혹시 모르니 친구들과 손잡지 말라’거나,
‘열나는 친구가 있으면 가까이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밤이 되어서야 빛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듯,
관계가 멀어지고 나니 관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