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소규모여야 한다. 우리는 마을에서 아이를 키운다.
얼마전,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식중독이 생겼다.
잘못된 식자재 관리로 여러명이 식중독 증세를 보이고, 몇몇 아이들은 햄버거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투석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투석치료를 받는 아이들의 사진과 부모들의 절절한 사연을 읽으니 더욱 그랬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해당 유치원은 문을 닫았고 맘카페도 종일 이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도 식중독과 관련한 지침과 안내문들이 전달되었다.
아동돌봄기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사회는 확인하고, 점검하고, 감시를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어린이집 CCTV의무화나 평가인증제도 등이 그러하다.
작년 한해, 우리 어린이집도 평가인증을 받는다고 몇 안되는 교사들과 조합원들이 참 고생을 했다. 결과가 만족할 만큼 나와서 우리는 물질적 지원도 더 받고 우리가 하던 활동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나름대로 의미도 있었다고 여긴다.
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를 수백번도 더 되뇌이게 만들었던 전시행정식의 평가지표를 떠올리면 이걸 2년에 한번씩 해야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갑갑하게 다가온다.
8살이 된 딸은 집앞에 지역아동센터에 다닌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그곳에서 친구, 언니, 오빠들과 매일같이 산 + 들 + 놀이터를 오고가며 논다. 코로나19와 식중독 사고가 터지면서 지역아동센터에서도 방역지침과 식중독 식자재 관리 등의 지침이 내려왔다.
5명의 교사들이 철저하게 지침을 지킬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12월부터 시작된 12시간 체제의 아이들 돌봄 노동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게 점검과 평가를 들이미는 보건복지부 전문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다.
(올해, 우리 아이가 다니는 지역아동센터는 점검과 평가대상에 올라 낮에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고, 밤을 새워 가며 서류작업을 해야했다.)
여튼, 딸은 새롭게 다니게 된 지역아동센터에서 오전에는 학습을 하고 오후에는 산과 공원, 놀이터등을 다니며 논다. 스케치북을 들고 공원에 나가 드로잉도 해오고, 50일이 넘는 장마기간에도 온몸을 흠뻑 적셔가면서 흙놀이를 하는 아이를 보니, 코로나19이며 햄버거병이며 장마며 하는 문제들이 잊혀졌다.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교사들이 아이들 방임과 등원문제를 고민하여 내놓은 방책이 오후 시간에 야외인 공원에 모여서 함께 놀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잠시라도 아이들의 생사확인(?)을 하려고 하는 교사들의 고민과 노력이 느껴져서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작은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어린이집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매일 오전에는 산과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서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놀고 급식교사가 해준 맛잇는 음식을 먹은 후에 자유놀이를 한다.
두 기관이 모두 큰 규모의 기관이 아니기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간의 합의가 있으면 자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더불어 문제대처도 빠르고 의사소통도 더 활발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마을 지역아동센터의 최대 수혜자인 나는, 마을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늘 생각한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 19나 햄버거병과 같은 사태가 생겨났을때 적어도 나는 이런문제에서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한 아이를 건사하는데에는 그만큼 많은 손길과 노동력이 투여된다. 엄마인 나도 두아이를 건사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하루이틀이 아닌데 기관에서 적게는 10명, 많게는 그 이상을 돌봐야 하는 교사들을 생각하면 그 업무 사이사이에 당연히 구멍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구멍은 필연적이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책임감을 높이고, 감시와 점검을 늘린다고 고쳐질 문제가 아니다. 너무 자명한 현실임에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돌봄기관을 고를때 규모가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돌봄시설을 선택하는 기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숫자가 적을 수록 예방이 더 수월하고, 소통이 더 원활하다. 오해가 적고, 문제가 생겨도 바로잡을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 기회에 아이들을 돌보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다시한번 성찰해볼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