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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반장 Jul 05. 2020

팀장이 아니었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까?

퇴사한지 1년이 되어가는 요즈음 문득 생각해 봅니다.

과연 내가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퇴사하지 않았을까? 회사생활이 덜 힘들고 덜 힘든만큼 즐거웠을까?


아담하지만 치열했던 팀장 첫해

2019년 퇴사한 회사에서는 4일 부족한 만 7년을 근무했습니다.

그 중에서 약 5년은 팀장으로 근무했으니 거의 대부분의 생활을 팀장이라는 직책으로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팀원 두 분과 함께였습니다. 사내 최소규모 팀이었지만 의욕만큼은 우주 최고였습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무식함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게 컸으니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소속 팀원 분이 다른 동료한테 보내는 제 뒷담화를 저한테 보내는 시트콤같은 해프닝(지금도 궁금합니다. 일부러 그랬던 것일지 실수였을지)을 겪으며 좌충우돌 팀장 첫 해를 보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회사와 팀원분들의 중간에서 공지사항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 이상도 이하도 한게 없었던 첫 해였던 것 같습니다.



가식적인 회사 소개자료용 사진(수~년전). 오른 쪽에 첫 팀원이었던 두 분이 있다.



최우수부서

그 다음 해 옆 팀의 팀장님께서 출산휴가를 가시게 되어 그 팀과 저희 팀이 통합되었습니다.

팀원이 두 분에서 열네분으로 일곱배가 커졌습니다. 팀원의 숫자도 숫자지만 회사의 주요 고객사가 포함된 팀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무식함도 걷혔던 터라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팀원분들의 대부분이 사원급이었던 것도 치명적이었습니다. 업무에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서 하다 못해 이메일 작성부터 문제 해결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던 때였습니다. 한 사람과 10분만 이야기해도 하루 중 2시간여는 훌쩍 지나갔으니까요.

그리고 주요 고객사가 대거 포진되었다 보니 제 명의로 발송해야할 레포트와 응대해야 하는 자문도 상당했습니다. 그렇다고 제 원래의 본업이 그 것으로 바뀐 것이 아니었으니 말 그대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전사에서 최고 매출을 올리고 있는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사 팀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월례회의는 모든 참석자가 돌아가며 월간 실적과 이슈를 발표했는데 제가 월 매출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다른 팀장분들의 나즈막한 탄성이 그렇게 듣기 좋았습니다.

'당월 매출은 이억 사천 팔백 사십만 구천원으로 전월보다 몇 점 몇 퍼센트 상승하여 연 목표매출의 몇 퍼센트를 달성 중에 있으며 목표 매출 달성에는 지장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연습도 해서 참석했습니다. 또박또박 크게 숫자를 읽을 때마다 기쁨도 컸던 것 같습니다.

(제조업도 아니고, 통관 한 건에 몇 만원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업에서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눈물나게 힘들었습니다. 워낙 천성이 약해빠져서 그런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해도해도 끝없는 일, 나의 작은 실수에 나뿐만 아니라 내 팀원까지도 피해를 본다는 부담감, 엑셀 실력이 지금에 비해서도 한참 부족한 때였는데 큰 금액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데이터 작업들에 대한 부담감, 팀원들, 회사 다른 직원과의 인간관계 등 늪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이듬해 연봉협상할 때 부대표님께(연봉 협상을 부대표님이 전 직원과 1:1로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팀장 잘할 수 있는지 교육좀 시켜주십쇼' 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절실했거든요.


학창시절에도 받아보지 못한 상장을 회사에서


공부로 생존하기

그 시기에 힘이 되어준 것이 학습이었습니다. 수 많은 일과 약속, 일정에 맞춰 해야할 일들 속에서 도구를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찾던 중에 Outlook을 중심으로 한 Microsoft Office 제품군이 눈에 들어온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도구를 배워서 하나하나 써먹을 때마다 너무 짜릿했고 나중에는 그냥 학습과정 자체가 취미같은 즐거움이었습니다. 학습하다 보니 또 그 분야 전문가 분들, 열심히 하시는 분들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신세계가 열린거죠.


저희 회사는 1년에 한번 워크샵에서 성희롱방지교육과 직장예절교육을 시행했던 것 이외에 직원교육을 하는게 없었고 저는 모든 회사는 원래 그런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되고 특히 HRD를 담당하시는 분들이나 강사분들의 세계를 알게 됐을 때는 정말 놀랠 노자였습니다. '뭐지? 왜 회사에서 저렇게 큰 비용을 들여서 교육해주지?' 

'억지로 교육 받는 모습이 아닌 사람도 많잖아?'

부러울 따름이었습니다. 

회사의 문화와 직원의 성장을 연구하고 투자하는 곳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소속되어 있던 회사에 크게 서운했습니다. 회사 임원분들이야 결코 적지 않은 수입을 만들고 계시겠지만 하나의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 저는 무엇을 할줄 알고 자산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세미나, 밋업 등의 외부행사라는 것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는데 정말 별천지였습니다. 능률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이렇게나 많은 조직과 개인이 뛰고 있었던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아무리 인터넷과 티비가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우물 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주위를 둘러보니 제가 회사에서 엑셀을 잘하는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팀원분들한테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기능을 하나씩 둘씩 알려주다가 어느날 문득 이것을 아예 과정으로 만들어서 교육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준비를 하다 보니 숟가락만 더 얹으면 되는데 싶은 생각에 전체 공지를 해서 신청자를 받아서 격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경영지원 이사님께 불려가서 한 소리 들었습니다.

'너 노조 만들려고 하냐?' 

그 해에 저는 여러 활동 공로를 인정 받아 연말에 최우수사원상을 수상했지만 자발적으로 교육을 하는 이벤트는 그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던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좁혀지지 않는 간극

배우면 배울수록 우물 밖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괴리감에 스스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문화와 분위기, 주변 분들이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보고 듣는 멋진 것들과는 거리가 너무 컸습니다. 그러던 차에 2017년 신청했던 사직신청은 대표님과 줄다리기 끝에 휴직으로 결정되고 데이터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와 다양한 외부활동을 경험했습니다. 7개월 정도의 휴직 뒤에 복직했지만, 이 때 이미 퇴사는 예정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간 회사에서는 저는 껍데기 뿐이었습니다. 9시부터 6시까지의 근무시간은 참아야만 하는 시간이었고 너무나도 답답했습니다. 비단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019년 8월. 결국 퇴사합니다.


퇴사한지 10개월이 지나고 많은 일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기도 하고 흐지브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일을 찾고 있습니다. 다시 예전에 했던 일과 비슷한 곳에 이력서를 보내보기도 합니다.

일확천금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일과 사람으로 만족감을 얻었으면 하고 바래 봅니다.


일련의 과정들의 첫 단추가 '팀장'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팀장교육이 제일 필요한건 신입직원들 아닐까 생각합니다.

팀장이 되고 나서 받게 되는 팀장교육도 의미는 있겠지만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결혼 전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와 같은 곳을 찾는 것과 비슷하게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팀장 교육을 받게 된다면 많은 의미가 있고 방향키가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 물론 이것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곳이 많을 수도 있겠네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르는 것 뿐일테니.


참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회사에서 팀장이라는 자리.


https://www.youtube.com/channel/UCkIIYrfSA-jigZezXCj72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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