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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사라지면,
하나의 도서관이 불에 탄다

인간의 경험은 책장보다 깊고, 기록보다 넓다

by Billy

어디선가 읽은 문장이다.


죽어가는 노인을 보며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서 죽음을 맞는구나”라고 말한다.

그저 생의 마침표로만 바라보는 시선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의 도서관이 타고 있다.”


그 말 앞에서는
잠시 숨이 멎는다.


말 한마디가
죽음이라는 사건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 사람의 삶이 가진 무게가
단번에 형체를 얻는다.

사람의 경험은
책장처럼 정돈되지 않는다.
기록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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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히 쌓인다.

때로는 빛나고,
때로는 묵혀지고,
그 모든 층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우리는 종종
경험을 사소하게 여긴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
흘려보낸 말들,
작은 선택과 오래 남지 않는 기억들.
그 모든 것들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펼쳐보면
그 안에는 이야기와 역사가,
누군가의 기쁨과 실패와 인내가
종이 한 장처럼 얇게도,
돌덩이처럼 묵직하게도 쌓여 있다.


노인이 떠나는 순간,
불에 타는 건 단순한 시간의 끝이 아니다.
누구도 다시 복원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한 사람의 말에도
그 말이 오기까지 쌓여온 날들을 떠올리게 되고,
누군가의 행동에도
그 사람이 지나온 계절들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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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도서관을 갖고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직업과 관계없이,
삶의 속도와 관계없이.

어떤 도서관은 화려하고,
어떤 도서관은 조용하며,


어떤 도서관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삶의 한켠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조용히 닫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세상을 떠났다’는 한 문장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졌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의 삶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살 이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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