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표정이 아니라
상상에 반응한다
상대의 얼굴보다 더 빠르게 작동하는 건 내 안의 기억들이다
사람은 상대의 표정을 볼 때
사실을 먼저 해석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빠르게,
자기 안의 상상이 먼저 움직인다.
표정은 하나지만
해석은 백 가지다.
실제로는 아무 의미도 없던 얼굴이
어떤 날에는 차갑게 느껴지고
어떤 날에는 불편하게 다가오고
어떤 날에는 상처처럼 내려앉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상대를 보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결을 보기 때문이다.
상대의 표정은 그저 ‘표정’이다.
하지만 내 안의 감정은
그 표정에 의미를 덧입히고
그 의미가 감정의 흔적을 깨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작은 틈이 생긴다.
그 틈 사이로
내 과거의 기억,
내 상처의 잔향,
내 불안의 온도들이
조용히 스며들어
상대의 얼굴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바꿔버린다.
한 번도 의도하지 않은 표정이
누군가에겐 거절로 읽히고,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눈빛이
누군가에겐 비난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표정을 확대하기 때문에
상대가 아니라
내가 지어낸 표정을 상대하게 된다.
이 과정은 너무 빠르고,
너무 무의식적이라
스스로도 알아채기 어렵다.
뇌는 ‘상대의 진짜 얼굴’을 보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다.
사람의 온도는
이때 크게 흔들린다.
상대는 그대로인데
내 해석이 뜨거웠다가 차가워지고
그 변동이 관계의 온도까지 흔든다.
결국 중요한 건
표정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표정을 해석하려는 내 마음의
방향을 읽는 능력이다.
지나친 확대 해석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감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성숙한 관계란
상대의 얼굴을 덜 의심하고
내 상상을 조금 더 의심하는 일이다.
표정은 순간이지만
확대 해석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깊어질수록
관계는 왜곡되고
마음의 온도는 어긋난다.
우리가 진짜 봐야 하는 건
상대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