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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이 있을리가

삶의 주도성

by 바이너리

어른들의 기대 속에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니?”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눈앞의 삶을 살기에 바빴던 나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내 미래를 그려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기대를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과,

혹여 그 기대에 닿지 못할까 두려운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래서일까. 나의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사육사, 선생님, 외교관처럼
누구나 한 번쯤 대답할 법한 직업들로 수시로 바뀌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보다, 직업이라는 이름표로만 규정된 답변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이 가장 반짝이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음악과 영화에 깊이 빠져들었을 때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연결고리를 좇아 새로운 음악을 탐험하고,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며 작품 세계를 독파하는 일에 몰두했다.


지금 같았으면 취향을 곧바로 업으로 삼는 길도,
혼자서도 충분히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예술은 돈이 많이 드는 길’이라는 어른들의 말 앞에서
취향을 그저 취미로만 묶어두었다.



오히려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편이 마음이 편했고,
성취하기도 더 쉬운 길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결국 대학 입시를 앞두고는 외할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입학 후 1학년 때 전공을 바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는
나에게 큰 기회였지만, 정작 그 시간마저 내 삶의 방향을 찾는 데 쓰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내가 주도성을 단번에 찾아내길 바라는 건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님, 빡빡했던 가정형편 때문만이 아니라,
사실 내 또래의 대부분도 그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으로,
성적에 맞는 과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정도가
우리가 가진 ‘자율성’의 전부였다.


나는 두어 번 전공을 바꾼 끝에 경영학과와 제품디자인을 선택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대학이라는 허허벌판에 혼자 던져진 듯한 고립감은,
사실 지금까지 ‘남의 선택에 기대어온 삶’이 끝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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