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 or 디딤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 더 정확히는 고학년 무렵.
학기 초나 말이면 담임선생님은 늘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교사용 참고서를 건네주며 “이걸로 공부해”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저 특별 대우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베품을 받아야 하는 아이’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 건 중학교 입학 후였다.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부모님의 직업과 수입 증빙 서류를 요청하셨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차상위 계층’이라는 확실한 이름표를 가진 가난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이후, 학교에서 내는 교육비는 일부 면제되었고,
친구들과 똑같은 종이를 받아도 내 통지서에는 다른 금액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차이’가 곧 내 가난을 증명하는 낙인처럼 느껴졌다.
평범한 학교생활과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나도 친구들처럼 평범하다”는 착각을 했다가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현실 앞에서 “평범”이라는 단어와 멀어졌다.
부모님은 이미 국가에서 정해놓은 장애 등급에 따라 복지 혜택을 받고 계셨다.
그리고 그 혜택은 우리 집 살림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끈이었기에, 엄마 아빠는 어떻게든 챙기려 했다.
나는 그 ‘악착같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는 태생부터 남들과 같을 수 없다”는 선언처럼 느껴져
진저리가 날 때도 있었다.
‘차상위 계층’이라서 받는 배려와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계층임이 드러날까 두려워 늘 숨죽여 살아야 했다.
그 시절 내 안에는 늘 ‘수치심’과 ‘감사함’이 공존했다.
덕분에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눈빛으로 세상을 보며 성장했다.
일부러 부모님에 대해 묻지 않을 것, 친구의 숨기고 싶은 면을 혹시나 알게 되더라도 절대 언급하지 않을 것.
몇가지 행동 수칙이 생겼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 확실한 낙인이 오히려 감사했다는 사실을 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더 열악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사회가 인정한 가난 속에 있었기에 안전망 안에 들어올 수 있었고, 그 덕에 발돋움할 수 있었다.
삶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디딤돌이 된다.
그 확실한 가난은 나를 주저앉히지 않았고, 오히려 위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 발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