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라는 이름의 두려움
부모님과의 물리적 거리도 떨어졌겠다, 더이상 나의 삶에서 다른 사람이 기준이 될 틈이 없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사라지자, 나는 홀가분한 기분이 아니라 자유라는 이름의 두려움을 느꼈다.
전공 선택은 어찌저찌 그나마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들로 채워
경영과 산업디자인을 선택 했지만,
그 이후로 직장을 선택하는 기로에서는 나의 전공을 전혀 살릴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는 상관없이
당장에 내가 독립한 채로 살아 가려면 조금의 경제활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던지, 근처 대학의 행정업무 지원들을 통해
'간신히 독립'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내 이름으로 내가 스스로 하는 선택들은 처음부터 내 맘에 들었던 게 아니다.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시행착오가 있고 나는 그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을 얻었다.
여러 경험들 속에서 내가 이런 일을 좋아하는 구나, 그런 일을 힘들어 하는 구나 하는
기준의 힌트들을 찾았고 첫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약간 스타트업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나름 지역에서는 괜찮은 대우를 하는 직장이였다.
이 직장에서 나는 여러가지 업무를 해내면서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기도 하고
고과에서 최고점을 받아보기도 했다.
내가 없는 선택들과 내가 한 선택들의 차이는
바로 그 과정과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를 만들어 주었고,
나의 선택을 통해 하루하루가 이루어지는 경험을 통해 주도적인 삶의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결혼이라는 또 다른 선택이 내 앞에 나가왔다.
단순한 연애,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내 인생의 기준을 함께 세울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걸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점차 결혼을 생각하고 함께 꿈꾸는 미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혼을 결심했고
나는 여전히 갈등을 피하는 습관, 남의 기대에 맞추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