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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종족과의 만남

결혼생활의 시작

by 바이너리

인간관계 중에서도 내가 내 자신을 가장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관계.


그건 아마 부부관계일 것이다.


연애는 다르다.
서로를 비합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현실보다는 감정에 압도되기에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정확히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결혼은 달랐다.

결혼 6년 차.
지금 돌이켜보면, 결혼이란 결국 전혀 다른 종족과의 만남이었다.

그만의 언어, 문화, 생활, 음식, 습관…


외국인을 만나는 것처럼, 사소한 디테일까지 전혀 다른 사람과
삶을 섞기로 결정하는 것이 바로 결혼이었다.


남편은 내가 지금껏 만나온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과는 달랐다.
과묵하고 내향적인 성격.


낯가림은 심했지만, 단둘이 있을 때면 어린아이처럼 재잘거렸고
그 모습은 내겐 낯설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같은 집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이에게 나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겨나고,

그런 상대방에게 나는 그 '설명'에 충실하지 못한 채 나를 이해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어떠한 행동을 멈춰주기를 요청하면서, 내가 그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행동을 그렇게 생각하는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시간과 마음을 들여서

정성스럽게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내가 싫다는 이유로 막아버린다던지의 패턴으로 갈등을 틀어막았다.


점점 이런 시간들이 쌓이자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도 대화는 어긋났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습관은 충돌했다.


결혼이란 건 단순히 사랑만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서로의 문화를 익히고,
그 과정 속에서 내 기준이 중화되는 경험의 연속.


나의 갈등을 피하는 습관, 남의 기대에 맞추던 태도는
결혼생활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특별함 덕분에 나는 나의 오래된 습관과 태도를 떼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은 일들이 결코 즐거웠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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