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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의 목소리

원망과 죄책감

by 바이너리

나는 처음으로 배우자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그의 병명은 '양극성 장애 2형'.

극단적인 조증보다는 덜한 조증이 오고 그 기간이 짧은 경향이 있다.



사실 그는 증상이 심해질 때만 병원을 찾았고,

처방받은 약이 다 떨어지면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복용을 이어가지 않았다.


한 번은 그의 직장에서 단체행사가 있어 지역 외로 출장을 갔는데,

그때 증상이 심해져 무단이탈을 하고 휴대폰까지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평소 같으면 받지 않았겠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나는 당일 반차를 내고 부랴부랴 그가 있다는 호텔로 향했다.

도착해서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 로비에서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의 상태는 어떤지 알 수 없는 불안과 걱정 속에서

그저 초조하게 시선을 출입구에 고정했다.




잠시 후, 저 멀리서 그가 걸어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침부터 불안이 차오르더니

급기야 그 장소를 견딜 수 없어 무작정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주머니 속 휴대폰은 달리다 떨어뜨렸는지 파손됐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우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그의 직장에 연락했다.


동료들은 갑자기 사라진 그를 찾느라 이미 경찰에 실종 신고까지 한 상태였다.



그 사건 이후 직장은 바뀌었지만, 비슷한 일은 해마다 반복됐다.



이 때는 우울증이 깊어져서 불안과 피해망상 등으로 생겨난 일들이였고,

이런 일이 터져야만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 다시 괜찮아지면 병 복용을 임의로 끊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지 않을까.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보여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대부분의 조울증 환우는 자신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지금이 아픈 상태인지, 정상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걸 ‘병식’이라고 부르는데, 그때까지도 내 배우자에게는 병식이 전혀 없었다.


나도 처음 겪는 일인데다가 그 일이 나의 배우자에게 일어나는 일이었고,

평생을 수동적으로 살아온 나에게 그 병에 대한 대처를 하는 것이 정말 어렵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배우자는 병식이 없는데다 그 병에 대해 말하면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일이라는 듯 반응하는 탓에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몰랐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악순환에 점점 압도되고 있었다.


그가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원망했고

또 동시에 그런 마음을 품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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