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냉정 사이
그와 연애를 시작하면 초반에 나에게 자신이 우울증을 앓았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우울증? 그거 감기 같은 거 잖아. 나에게도 내가 알게 모르게 왔다간 시절이 있었어.'라고
대답했다.
정말 나는 그가 우울증인줄로만 알았다.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던 배우자가 결혼 1년차에 잠에 허덕이다 못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출근을 하지 못했던 그 첫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엔 이런 신체증상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과로로 부족한 잠을 자는거 아닌가 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변해가는 시기가 되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잎파리를 내고 자기가 죽어있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소리치는 것처럼
갑자기 활동량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 않던 SNS 활동을 한다던가,
늦게 자고도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운동을 나가고,
나에게 여러가지의 주제로 쉴새 없이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한번의 겨울이 또 찾아왔다.
말수가 줄고, 짜증이 늘고,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는 날들.
이 주기적인 변화는 처음엔 단순한 기분 탓이라 생각했지만,
차츰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의 패턴을 파악하는 건 중요했다.
그래야 지금이 조증인지, 우울인지 가늠할 수 있었고,
그에 맞춰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이 버티기 위해서였다.
앞에서 말했던 첫 증상은 우울이 극도로 심해져서 나타나는 신체화 반응이였고,
저 상태에서는 거의 2-3일을 내리 자거나 12시간을 자고 끼니를 겨우 떼우고 다시 잠을 이어잤다.
그리고 나서 조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이 되는데, 나의 배우자의 경우에는 이렇게 조금 회복되고 나면 그냥 원래대로 행동을 하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 모습이 사실은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이자 상처였는데 말이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막상 시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아들이 겪는 병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