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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Apr 18. 2022

시작보다 어려운 끝

<퇴사>

보통의 단어들을 골라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건 2018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사 년차 직장인이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곤 해도 사 년이면 꽤 긴 시간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대리니 과장이니 하는 직급을 없앴지만, 이전으로 따지자면 삼 년의 사원 생활을 거쳐 이제는 대리로 명함을 바꿔 달았을 연차다.


 그러다 보니 함께 입사한 동기들도 하나둘 퇴사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자신의 하루 여덟 시간을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취업을 한 다양한 직군의 친구들이 봄 인사와 더불어 퇴사 소식을 전하는 요즈음이다. 하나의 직장에 몸담은 채 평생을 살았던 시대와 다르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스스로를 브랜딩하고, 몸값을 올리고, 치열하게 살아내어 이직을 한다. 일단 삼 년을 달렸으니 쉬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퇴사를 하고 훌쩍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나는 맞은편에 앉아 그들의 퇴사 히스토리를 들으며 웃고 화내기도 하고, 편도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이야기에 부러워하기도 하는 봄을 맞이했다.


 퇴사를 굉장히 쉽게 결정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나름 오랜 기간을 다니며 익숙해진 환경과 보다 잘 알게 된 사람들, 수월해진 일을 그만두고 다른 환경과 새로운 일들을 찾아 움직이는 건 얼마나 귀찮고, 고되고 또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다름 속에서 계속 불편함을 찾아 움직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그들의 결정에 축하의 마음과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꽃길만 걷기를


 한편, 나처럼 태어나서 퇴사를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퇴사에 대해 쓰라고 한다면 언덕 너머 무지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생각하게 된다. 상상은 대부분 희망적이고 다가오지 않은 일들은 나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느지막이 일어나 화분을 돌보고 사람 없는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 전시회를 보러 가거나 배우고 싶던 것을 공들여 배우고, 시간에서 오는 여유를 걱정 없이 쓸 수 있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라면, 지금보다는 즐거울 거다. 


 그런고로 3년 하고 4개월동안 퇴사를 하고자 하는 이유 리스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 또한 많다. 그러니 만약 내가 퇴사를 한다면, 쉬기 위해서라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들 말고 다른 일 중 꼭 하고 싶은 게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입사를 한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데 퇴사를 하는 이유가 굳이 뚜렷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시작보다 끝을 어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되도록 빠르길 바라는, 언젠가 닥칠 나의 퇴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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