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처음 쓰는 사직서는 짜릿했다. 인턴으로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6개월 동안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직원으로 등록이 되어야 했고, 그 말은 즉 인턴을 그만두기 위해서도 정직원처럼 사직서를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경영지원팀에서 받아온 사직서에 이름을 쓰고, 입사날짜를 썼다. 퇴사 사유를 쓸 차례가 되자 나를 둘러싼 다른 직원분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을 좀 대신 적어달라며 장난을 쳤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인턴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고, 25살의 막내로 회사를 뽈뽈 거리며 돌아다녔던 나는 팀장과 본부장님 그리고 회장님 앞에까지 가서 이제 내일부터 출근을 하지 않는다 고하고 안녕히 계시라며 인사를 드렸다. 회장님은 학교를 졸업하고 설계 일을 할 것이냐 물으면서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명절 덕담 같은 말씀을 했지만, 당시의 난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던 것 같다. 그저 웃었다.
두 번째이자 곧 첫 번째 정식 퇴사는 내 첫 회사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미팅을 준비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고 밤을 새우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닐 때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퇴사를 입 밖으로 꺼내자 회사 생활은 급격히 힘겨워졌다.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실망이라 말했다. 내가 더 오래 회사를 다닐 것이라 기대했다고 했다.
나는 무엇도 숨기지 않았다. 이직을 하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고 했고,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고 곧이곧대로 말했다. 연봉이 오를 것이었고, 좀 더 큰 프로젝트를 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솔직한 것이 곧 모두를 위하는 길이고 또 예의라고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을 난 더 나중에야 알게 됐다.
가장 최근, 세 번째 퇴사는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정도 전의 일이었다. 회사를 3년 넘게 다니면서 한 번도 퇴사를 해야겠다고 농담으로라도 말한 적이 없었다. 동료 중 퇴사를 해야겠다며 대표와의 면담에 들어갔다가 설득당하고 다시금 돌아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몇 봤다. 그들은 아직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회사 동료들은 꼭 퇴사할 때 대표보다 본인들에게 먼저 이야기해달라고 했고, 퇴사를 결심하자 그때 술자리에서 동료들이 했던 말들이 떠올라 한 명씩 옥상으로 불러냈다. 나의 퇴사 결심에 대표가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할지 서로 다른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여러 후보들이 나왔지만, 나의 예측이 들어맞았다.
“저, 퇴사하려고요.” 대표를 불러내 따로 건넨 통보에 대표의 대답은 간단했다. “언제요?”
퇴사 이유에 대해서는 물었지만, 퇴사를 만류하지도 회유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의 무덤덤한 반응에 회사에서 나의 중요도가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며 속상해하진 않았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날 붙잡지 않은 것도 내가 쉬이 결심을 돌이킬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다시 친구들의 퇴사 소식을 듣는다. 축하한다고 손뼉을 치면서 앞으로의 계획도 묻는다. 이미 퇴사의 홀가분함을 아니까, 진심으로 부럽다고도 말한다.
나에게 지난 세 번의 퇴사 이후 또 다른 퇴사는 없을 예정이라,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떤 일도 책임 질 필요 없는 상태의 날들을 주변 사람들이라도 실컷 즐겨줬으면 좋겠다. 아마 다시 퇴사의 시점들로 돌아간다면, 나도 조금 더 길게 쉬어보려고 할 테지만 일복 많은 사람들은 그게 또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