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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Apr 04. 2022

표정이 불러일으키는 오해

<표정>

"너 이거 별로지?"

"어?"

"표정에서 티 나."


늘 그랬다. 말이 먼저 나오기도 전에 눈치없는 안면근육은 제 멋대로 움직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도 사회화 된 인간이니 적당한 말과 적당한 반응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내 표정은 언제나 말보다 앞섰다. 별로인 걸 별로라고 말하면 분명 상처받을텐데.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고민하다보면 침묵이 길어지고, 상대와 나 사이에 오가는 말이 없으니 내 표정은 더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가닿는다.


"야, 차라리 싫으면 싫다고 해라."


어정쩡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내가 웃긴지 친구가 그냥 웃고 만다. 딱히 별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상처준 것 같아서 미안하다.



때로는 아무 표정을 짓지 않아서 오해를 불러사기도 했다. 눈꼬리가 올라가 있어서 그런지, 웃을 때와 웃지 않을 때의 표정이 제법 다른 편이어 그런지, 무표정한 표정으로 있을 때면 꼭 누군가 화가 났냐고 물어봤다. 


"무슨 일 있어?"

"음? 아니? 나 아무렇지 않은데?"


아무 일도 없었다. 화가 나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만성 피로라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디폴트 값이니 특별한 것도 아닐테다. 그저 나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을 뿐이다. 모든 안면근육이 제 위치에 가 있는 상태인데 사람들은 자주 오해를 했다. 특히 집중하면 미간을 찡그리는 버릇 때문에 그 오해는 배가 되어 돌아올 때도 있었다. 왜 표정이 그렇게 심각한거냐, 무슨 일이 있냐 묻는다. 나는 그저 아무 표정 없이 내 할일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처럼 표정은 내 의도와 관계없이 읽히게 된다. 숨기고 싶었던 생각이 얼굴 위로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던 표정이 곡해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감정의 표현이 표정으로 나타나곤 하지만, 드러나는 표정이 감정의 전체는 아닐테다. 하지만 표정은 종종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직접적인 말 한마디 보다 미묘한 표정 하나가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표정이 안 좋던데요?'라는 말 한 마디가 마치 내 감정처럼, 내 태도처럼 읽히게 될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괜한 오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생각하다가, 그럼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짓는 게 맞는걸까 고민하게 된다. 내가 짓는 표정을 나는 볼 수가 없는데 말이다.




마스크가 보편화 된 코로나 시대. 마스크를 쓰면서 좋은 점은 거의 없지만, 몇 없는 장점을 꼽아보자면 표정을 숨겨준다는 것이었다. 눈 밑으로는 마스크가 덮고 있고, 눈썹은 앞머리가 덮고 있으니 내 표정을 볼 수 있는 건 눈 밖에 없었다. 한시 빨리 이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싶지만 이제는 살짝 겁이난다. 내 표정을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는 게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다양한 감정이 마스크 아래 있으니 부끄러워도 드러내야겠지. 다양한 표정이 주는 게 비단 오해뿐만은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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