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1
나는 보통 두 가지 이유로 걷는다. 하나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나머지 하나는 걷는 행위가 주는 감각들과 생각들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두 발로 번갈아 땅을 디디고 중력을 가로지르는 이 일상적 행위의 매력은, 끊임없이 육체를 움직이는 데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움직임 가운데에 박힌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며, 감각과 생각이 두개골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흐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눈꺼풀을 깜빡이며 키보드 자판을 두드릴 수 있는 것처럼 나는 걸으면서 엄청나게 많은 감각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흘려보낸다. 오른다리, 왼다리, 또 오른다리, 왼다리, 오른, 왼, 오, 왼... 톡톡거리는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속도로 걷기에 집중하다 보면 나의 물리적인 위치라든지 하는 것은 곧 중요하지 않게 된다. 대신 시각과 후각, 촉각이 활짝 열리고 바짝 서서 나를 둘러싸고 지나가는- 또는 내가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사소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줄지어 출근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물고기 떼처럼 아주 유연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 지나치는 옆 사람의 셔츠 칼라가 조금 구겨진 것, 며칠 전까지만 해도 피어 있던 수선화가 빼짝 말라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 버스를 향해 뛰는 사람의 급하고 뜨끈한 기분, 아침에 벌초한 풀 냄새, 새 소리, 수선화와 담에 핀 장미의 노랗고 빨간 색, 그 장면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내 걸음의 위치, 지는 구름과 해를 반사하는 창이나 바닥 보도블록의 무늬 같은 것들이다.
1.2
주변을 기웃거리며 이동하는 시간을 즐긴다는 공통점으로, 걷는 것은 버스나 기차, 비행기 창가에 앉아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지하철과는 또 조금 다르다.
2
스물세 살 여름에 바르셀로나에 갔던 나는 스물네 살의 봄에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지도를 열어 보니 여섯 갈래 정도의 길이 있었던 것 같다. 그중 내가 걷기로 한 코스는 리스본에서 시작해 포르토를 거쳐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비교적 짧은 길이었다. 나는 도시사 기말 시험에 낙제해 추가 시험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짧게, 포르토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같이 살던 아빠 뻘 친구는 산티아고? 혼자 가? 위험하지 않을까? 왜 가는데? 하며 마주칠 때마다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나는 응, 혼자 가. 괜찮아. 국경을 발로 넘는 게 무슨 기분일지 궁금해서. 우리나라는 섬이나 다름없거든. 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국경을 발로 넘건 물구나무서서 넘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의 나는 붕 떠 있었고, 지난 몇 달을 돌아보기도 무서웠거니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똑똑하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아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똑똑해지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꽤나 괴롭고 불안한 일이었다.
그래서 좀 오래 걸어보기로 했다. 많은 것들이 불확실할 때에는 오히려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그렇게 나선 길 위에서 나는 비와 햇빛과 바람에 정말이지, 흠뻑 젖었다. 에버랜드에서 오천 원 주고 샀던 파란 우비를 입고 빗속을 걷고, 포도밭에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맞바람이 세게 불 때는 와악 소리를 지르고, 온천이 있는 마을에서는 퉁퉁 부은 발을 담그고, 머리에 꽂고 걷던 꽃을 깜빡하고 농가의 아주머니에게 인사하다가 서로 한바탕 웃고, 새벽에 길을 나서다가 지는 달을 마주치고 한참을 서 있다가, 목이 너무 말라 마을을 찾아 물을 마시고,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듣고, 트럭이 달리는 고가도로 위를 걷다가 경찰에게 혼나고, 맛없는 칼로리 바를 씹으며 또 걸었다.
그렇게 십여 일을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당 앞에 도착했고, 그즈음에는 애 거 타라는 할머니 친구와 함께였다. 애거타와 헤어지고 삼 일 정도 그곳의 수도원에 머물렀다.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비슷하게 좀 멍청했다. 그런데, 다 걷고 나니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면 나는 곧 또 불안하고 외로워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가 되면, 또 운동화를 고쳐신고 걸으러 나갈 테다.
3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걸으면 어딘가에 부딪힐 염려 없이 하늘을 보며 걸을 수 있어서 좋다. C와 손을 잡고 걸으면 더 그렇다.
4
분명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걷는 것과 달리 서 있는 것은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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