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말을 믿은 적이 있었다. 분명 그전에 제주도를 갈 때에도 비행기를 타 보았을 텐데, 사람들이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는 당최 기억이 안 났다. 엄마나 아빠가 멀미에 지친 나를 둘러업고 비행기에 올랐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우리 집에서 가장 먼 곳을 다녀왔던 사람은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였다. 오빠는 늘 그랬듯, 어린 나이에 어른의 기대를 짊어진 채 씩씩하고 조금 외롭게 비행기를 탔다. 나와 동생은 그를 보내며 오빠가 호주인가 오스트레일리아인가를 간대, 갈 때만 열 시간도 넘게 비행기를 탄대, 그래서 비행기에서 공짜로 밥도 준대 하며 조금의 부러움과 걱정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오빠는 이 주인가 삼 주만에 돌아와 몇 가지 기념품을 쥐어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호주가 같은 나라라고 일러 주었다.
그로부터 십 년 정도가 흘러 나에게도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이 찾아왔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캐리어 두 개를 부쳤다. 나는 빳빳한 녹색 여권, 비행기표와 공항의 웅성거림, 목 베개, 매끄러운 바닥, 비싼 핫도그와 커피, 새벽 한 시 반, 뒤적거림, 졸린 눈들, 엉킨 이어폰 줄과 휴대폰 충전기, 또각이거나 굴러가는 것들 사이에서 두리번대다 혼자 비행기에 올랐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데 승무원이 마실 것을 권했다. 나는 순순히 와인을 건네받아 거푸 마시고 꾸벅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깨어 마주한 밤하늘은 아주 고요해 보였다. 원해서 떠나는 것이었고 도착할 곳도 있었지만, 혼자 비행기를 타는 건 아무래도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10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비행기를 타고 내린 시기였다. 마음이 허해질 때마다 툭하면 비행기를 탔다. 외롭게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날아와 비행기를 타며 외로움을 달랜다는 건 좀 이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학교 수업보다는 눈으로 보고 만지고 느껴 알 수 있는 것들이 좋았다. 수업을 적당히 째고, 카메라와 필름을 챙겨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돈이 없으면 버스를 탔지만 목적지나 시간대가 이상한 비행기 표 값은 대개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행하는 기차표 값보다 쌌으므로, 국내 여행을 하는 거라고 합리화하며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산 저가 비행기는 작은 기류에도 잘 흔들렸다. 착륙할 때 승객 모두가 박수를 치던 비행기를 탄 적도 있었다. 기분 좋게 여행 계획을 짜다가도 비행기가 심하게 기울거나 흔들릴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뭘 하고 죽어야 하나. 유언을 미리 써 놓을걸. 어디에 무엇을 남겨야 나의 마지막 말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옆에 앉은 사람의 가족과 친구를 걱정하고, 나의 친구를 떠올리고, 가족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인터넷도 되지 않는 데다가 물에 가라앉아 버리거나 불에 홀라당 타 버린다면, 하는 가정에서는 아직도 어떻게 고마웠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내가 딛고 있는 땅에서의 외로움을 떨치려 비행기에 오르고 싶어도, 아무도 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피하고 싶어도, 웅성이던 공항은 한산해졌고 앞으로 자유롭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기가 언제 올 지 알 수 없어졌다. 나중에 가야지, 하고 아껴 놓은 곳들이 많은데. 비행기에 올라 열 시간 넘게 날아가도 괜찮은 세상이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