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꽃을 생각하면, 매일의 출근길에 대해 말하고 싶어진다. 출근하는 아침에는 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침은 남대문시장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회현 역 오 번 출구로 올라와 직원들이 분주히 만두 소를 밀어넣는 만두집과 매대를 하나둘 펼치기 시작하는 가게들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거대한 상가가 나타난다. 일 층은 악세사리들을 팔고 이 층은 이불과 그릇, 삼 층은 조화와 생화를 판다. 꽃 시장은 보통 아주 이른 새벽부터 이른 오후까지만 영업하기 때문에 오전 일곱시에서 여덟 시 사이는 꽃이 한창 팔리고 배달되고 포장되는 시간이다. 굳이 삼 층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커다란 꽃바구니와 다발을 몇 개씩 든 퀵 배달 아저씨들이 바쁘게 지나다녀서 물을 흠뻑 머금은 꽃 내음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닌다.
아주 가끔 평소보다 이르게 출근하는 날이면 꽃을 사지 않아도 괜히 상가 3층으로 올라가 잔뜩 쌓여 있는 꽃들을 구경한다. 처음 몇 번은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돌다 지각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꽤 능숙하게 생화가 있는 곳들을 쓰윽 돌고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강남 고속터미널이나 양재의 꽃시장만큼 크지는 않지만, 남대문의 꽃시장에서도 계절이 바뀌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우스에서 자라는 꽃들이나 수입 꽃들은 계절을 타진 않겠지만 사 월의 튤립이나 오월의 붉은 카네이션 속을 걷다 보면 붕 뜨는 기분이 된다. 조금 있으면 수국이 많이 나올 거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꽃을 산다. 생일, 기념일, 누군가를 기리는 마음, 심경의 변화, 옆 사람의 부추김, 큰 의미 없는 선물을 하거나 스트레스성 소비가 필요할 때 등등 꽃을 살 수 있는 핑계거리는 무수히 많으므로 나는 그저 점심 시간을 기다리다가 현금을 적당히 뽑아 뚤레뚤레 시장에 가면 된다.
그냥 꽃가게에서보다야 남대문에서 꽃을 사는 게 훨씬 싸지만, 괜히 시장의 기분을 내기 위해 나는 센 척하며 흥정을 시도한다. 이 꽃 얼마에요? 좀 깎아주실 수 없어요? 하면 사장님들은 그만 좀 물어보라는 표정으로 대충 대답하면서도 좋은 꽃이 들어온 거라며 은근히 압박을 준다. 나는 사장님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고, 다른 가게에서 슬쩍 또 가격을 물어본다. 싸고 좋은 건 많지 않지만, 시장이니까 그래도 될 것 같아 자꾸 그렇게 밀당을 한다.
꽃을 사는 건 꽃을 사는 나 스스로의 모습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향기나는 신문지 뭉치를 들쳐안고 바깥으로 나오면 돈을 쓰고 나오면서도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아마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며 꽃을 사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순간의 기분을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꽃을 사면서 제일 좋은 순간은 미묘하게 다른 꽃들의 색과 모양 중에서 마음에 드는 조합을 골라내는 순간이다. 사 온 꽃들을 다듬어 가지런히 묶거나 꽂는 과정도 하나의 작은 세계를 만드는 것 같아 무척 즐겁다. 그리고 그 꽃다발을 받은 사람이 기뻐해 주는 것이 정말 좋다.
아무리 물을 자주 갈아 주고, 영양제를 꽂아도 꽃은 뿌리가 없기에 결국 시들고 만다. 말라비틀어진 꽃잎과 물에 푹 절은 꽃대를 쓰레기통에 통째로 버리는 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또 꽃을 사고 선물하고 스스로나 누군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