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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것 혹은 다시 돌아오는 것

<꽃>

by 선아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한 오래도록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가 그리 예쁘다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지만, 들여다보면 암술과 수술이 뻗어 나온 모양새가 나에겐 조금 징그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꽃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모두 큰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며칠 바라보고 나면 버려지고야 마는 것.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겼다.


꽃을 좋아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사그라들고 마는 유한성에 있었다. 꽃은 금세 지고 말았다. 고개를 떨구고, 잎은 바싹 마르기 시작하고 쪼그라들었다. 죽음 같이 보였다. 끝이 너무 빠르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어서, 나는 아예 관심을 주지 않는 편을 택했다. 애정을 주면, 그저 떨군 꽃의 고개마저도 슬프게 느껴질까 봐. 꽃과 달리 나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원했다. 시간의 풍파에도 쉽게 변치 않는 것이 더 가치 있다 여겼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꽃이 언제 오고 가는지 조금씩 몇 년에 걸쳐 배우기 시작했다. 매화와 목련이 피기 시작하고, 산수유가 노랗게 쫑쫑 매달렸다가 진한 노란색의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가, 벚꽃이 슬그머니 하얗게 고개를 내민다. 그렇게 봄이 훌쩍 다가올 때면 나는 시기를 놓칠까 봐 급하게 겨우내 묵혔던 카메라를 꺼냈다. 그게 아니라면 휴대폰을 꺼내 렌즈를 옷에 슥슥 닦고 봄이 온 정경을 담았다. 봄 사진에 꽃이 빠질 수는 없었다. 주중에 비라도 온다면 꽃이 모두 떨어져 버릴까 전전긍긍하게 됐다.


자꾸 보다 보니까, 또 찍다 보니까 꽃은 예뻤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만개하는 꽃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벚꽃은 사람들을 여의도로 몰려가게 했고, 산수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례까지 한참이나 버스를 타고 내려가게 만들었다. 꽃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괜히 한 번 스윽 구경하게 만들었다.



매년 새로운 풍경들을 보고 새로운 꽃을 알게 된다. 올해는 노란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고,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를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환상적으로 새하얀 꽃을 피워낸 이팝나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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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깥을 돌아다니며 꽃을 배우고 있는 나에게는 나무가 피워내는 꽃이 더 익숙해서, 작고 여린 꽃들을 잘은 모르지만 이제야 조금 꽃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 꽃은 금세 지고 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찰나의 순간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기쁜 일이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윤여정 배우가 연기했던 할머니는 서투른 한글로 시를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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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도 꽃이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나 다시 돌아온다는 점에서 그것 또한 꽃의 변치 않는 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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