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아름다움, <꽃>
로맨틱 DNA가 멸종해버린 우리 집안에선 '꽃'이 흔하지 않았다. 기념일에도 보기 어려운 존재를, 아무 의미 없는 일상에서 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꽃이라고 하면, 졸업식에나 받는 그런 귀한 존재였거든. 그래서 나는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예뻐할 줄만 알았지, 그것을 산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 꽃을 샀던 게 언제였더라. 아마 누군가에게 축하할 일이 있어서 샀던 것 같다. 축하의 의미로 꽃을 건넨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이었으니까, 나도 학교 안에 있는 꽃집에 가서 꽃다발을 하나 샀다.
세상에, 나는 꽃이 그렇게 비싼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몇 송이 되지도 않는 작은 꽃다발이 3만 원이라고? 이 작은 꽃다발 하나가 학식 6번의 값과 똑같단 말이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맛있는 3만 원짜리 초콜릿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꽃다발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포장된 꽃다발을 상대에게 건넸다. 그가 받는 축하는 나에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미 나 말고도 제법 많은 사람에게 꽃다발을 받았으니까. 이미 있던 꽃다발들 사이에 나의 꽃이 하나 더해진다. 그 꽃은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꽃에 대한 의미는, 비로소 내가 꽃을 받았을 때 완성되었다. 그 조그만 꽃다발을 보니, 생각보다 기분이 더 좋더라고. 칙칙한 내 방 한 켠 생기를 넣어주는 것 같기도 했고, 어딘가 은은하게 향마저 퍼지면 그것만큼 기분이 좋은 게 없었다. 선물 받은 꽃다발은 화병에 넣고 물을 매번 갈아주어도 항상 빨리 시든다. 나는 또 그게 아쉬워서 죽어가는 그 존재를 보며 동동거리기도 한다. 한 2주 정도만 같이 살아주면 좋을 텐데. 3일은 너무 짧잖아.
이제 나는 꽃을 살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소멸해버린 로맨틱 DNA를 살려낼 방도는 없어서, '네 생각이 나서 꽃을 샀어.'와 같은 소름 돋는 서프라이즈는 여전히 못하지만, '축하해'라는 의미로 달콤한 초콜릿 대신 꽃을 건넬 수는 있게 되었다.
그렇게 주고, 또 받다 보니까 꽃이 점점 예뻐 보이더라고. 3일만 지나도 시들어버릴 그 존재를, 굳이 건네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꽃이 가진 그 싱그러움과 알록달록한 색채감, 그리고 유한한 생기. 꽃이 가진 아름다움은 무한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내가 이 꽃을 조금 더 예뻐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는 것도 같고, 역설적으로 그 유한함 때문에 주고받는 꽃이 더욱 가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건 너와 나 사이에 어떠한 살아있는 생기가 오갔던 증거가 바로 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