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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Jan 24. 2022

나 또한 그에게

<친구>

 친구가 이 세상의 전부이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에는 친구라는 이름의 타인이 나를 증명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와 우정 다이어리를 쓰고,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건 하나라도 내가 듣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지금에야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거나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사건들이 많다는 걸 빨리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친구라 함은 좋든 싫든 나의 예민하고 불안정한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는 건 만 1세에서 3세 사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으로 나의 근본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온전히 타의와 환경으로 만들어진 나의 본성과 달리 내가 자아를 갖추어 갈 때, 존재 자체로 나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욕심이 많아질 무렵부터 생겨나 세상의 기준이 내가 아님을 깨닫게 해 주는 사람들. 나는 그들 덕분에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런 마음의 연습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를 가늠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아직까지 나는 함께한 그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방금 만난 사람과 금세 친구가 되는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나는 누군가와 친구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조심스러운 마음, 친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의 다름이나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과 환경이 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나의 주변에는 늘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돌려주는 사람들. 나는 정말이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넘어지면 늘 나를 일으켜 주고 나의 존재를 긍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안고 나 또한 그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도 나는 꽤 부지런한 사람이 된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여유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것을 잘 챙기지 않으면 안 되니까, 아무래도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시간과 만남이 쌓이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우리가 어떤 다른 상황에 처해 있든,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시시콜콜한 사건들을 모두 주고받지 않아도 자신 있게 나는 그의 친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의 무심한 마음이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변을 더 잘 둘러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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