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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an 24. 2022

오래된 친구에게 전하는 인사

<친구>

오래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까운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고 집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겨울이라 쌓인 눈길을 뽀득뽀득 밟으면서 미끄러질까 조심스레 걸어야 했던, 손끝이 시린 밤이었다.


그것은 몇 년 만에 보내는 인사였다. 그나마도 전화는 하지 못하고, 잘 지냈냐고 또 별 일은 없었냐고 묻는 나의 단어들 어딘가에는 머쓱함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으나 티를 내지 않으려 했고, 그저 나의 반가움만 알아차려 주기를 바랐다.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일상이 바빴던 탓이었으나 그건 결국 핑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게 무심한 사람이었다.



오래된 친구는 이제껏 항상 그랬듯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우리는 우리의 근황에 대해 간략한 대화를 나누었다. 일상을 나누지 않는 근황은 보통 멀리서부터 시작한다. 아직도 그 동네에 사는지, 다니던 회사는 계속 다니고 있는지, 소중한 사람은 여전한지 혹은 새로운 사람이 생겼는지. 그렇게라도 시작하면 언젠가는 일상에 대화가 닿을 것이라 믿으면서, 더듬거리며 나의 친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아간다.


그새 우리 사이에 흘러간 시간은 우리의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오래된 친구는 더 이상 나의 근처에 있지 않았고 나는 이제 다니던 회사를 다니지 않고 독립을 해 직장인의 신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간 이어지지 않은 대화들을 메우기 위해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나는 또다시 아무도 믿지 못할 약속을 입밖에 내었다. 그쪽으로 만나러 가겠다고, 가면 밥 한 끼 먹자고. 나는 정말 내일이라도 기차를 잡아 내려가고 싶을 만큼 진심이었는데, 오래된 친구가 얼마나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밥 한 끼 먹자는 문장은 여느 때와 같이 한없이 가벼웠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소한 일상까지 알고 있지는 못해도,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여전한 사람들. 함께한 시간의 배가 넘도록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때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 때문에 유치한 농담을 던지며 손뼉을 치며 웃게 되는 사람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오래된 친구들에 대해 나는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여전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도 여전할 것이라는 오해를 쉽게 하고 만다. 나에게 아무 일이 없었듯 그들에게도 별일이 없이 잘 지내왔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만다. 그러다 며칠 전처럼 문득 쏜살 같이 몇 년이 지나버렸을 때, 우리의 관계가 여전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오래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 보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우리 사이가 변하지 않았기를 두 눈 꼭 감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때, 나는 무심했던 내가 밉고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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