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부분 Mar 07. 2022

골목과 사람들이 만드는

<동네>

 여섯 살 처음 아파트로 이사하고 난 뒤부터 나는 계속 아파트에 살았다. 이 층짜리 주택 이 층에 세 들어 살던 우리 집이 이사하던 날, 자동차 뒷좌석에 누워 보던 하늘과 복닥거리고 부산한 공기, 창문이 어느 때보다도 활짝 열려 있던 베란다를 기억한다. 그렇게 들어간 첫 아파트는 십이 층에 두 동밖에 없는 조그만 단지였다. 남향으로 배치된 두 건물 사이에는 조그만 놀이터, 옥외 주차장, 작고 큰 경비실이 놓여 있었다. 


 그 아파트 단지에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많이 살았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긴 한데, 우리 집 라인의 삼 층, 사 층, 육 층, 십 층, 십일 층, 십이 층이 다 친구 집이었다. 옆 라인에도, 뒷 동에도 친구들이 살았다. 


 나의 동네는 자연스럽게 아파트 단지와 학교 사이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샷시나 금속, 유리, 타이어,  파이프 같은 공업 자재를 취급하는 작은 가게들, 치킨집, 게이트볼을 치는 경로당 할머니와 할아버지, 붕어빵 가게, 커다란 오거리, 만화방, 교회,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벽들을 지나치다 보면 금방 학교가 나왔다. 학교를 오가며 불쑥불쑥 마주치는 친구들과 이곳저곳을 쏘다니다 보면 하루가 아주 금방 지나갔다. 아파트 가운데 있는 놀이터에 모여 비비탄을 쏘거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경찰과 도둑을 하다 해가 넘어가면 뒤쪽 동에 사는 엄마는 거실 베란다 창을 열고, 앞쪽 동에 사는 엄마는 부엌 베란다 창을 열고 애들의 이름을 불렀다.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자취를 했다. 동네를 골라서 지낼 수 있었다기보다는 학교와 가깝고 여건이 되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그래서인지 나의 동네는 참 좁게 느껴졌다. 조그맣고 고만고만한 원룸에서 잠을 자고 술을 마시고 문만 열면 친구들을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생활에는 과제도 팀플도 많았던 까닭에 학교 근처를 잘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서울의 다른 골목 풍경들에 놀라곤 했다. 몇 분 정도 지하철을 타다가 지상으로 뾱 올라오면 완전히 다른 동네가 펼쳐졌다. 우둘두둘한 한남, 반듯한 마곡, 복작거리는 왕십리, 따뜻한 연희와 높직한 강남, 사람 냄새 안 나는 평창동까지. 어느 한 곳에 오래 살아도 금방 다른 도시의 공간감을 찾아다닐 수 있으니 동네 구경에는 서울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동네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일 거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던 것처럼, 애인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행복함을 느낀다. 이 동네는 조용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열한 시가 넘으면 밤의 나무들을 느끼며 조용히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이사를 온 후로는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가볍게 만나 음식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는 게 소소한 낙이 되었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 작은 동네를 만들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라져 버린 할머니 동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