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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유영국의 색채추상. 유영국. 18년 9월.

by bincent

2018년 9월 instrgram(bincent.kim)에 작성...하려다 저장만 해놓고 못한 걸 이제 마무리


231123927.jpg 작품, Oil on Canvas, 130 x 194cm, 1965


포스팅을 시작한지 어느덧 6개월이나 지났는데 국제갤러리에 대한 글은 처음 쓴다. 폴 매카시展 이후 특별히 끌리거나 다녀온 뒤 여운이 많이 남는 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로니 혼 전시가 끝나갈 무렵부터 많은 기대를 안고 있었다. 최근의 윤형근展처럼 단색화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는 유영국 작가의 개인전을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덕수궁관에서의 개인전을 놓친 것을 만회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231123468.jpg 산, Oil on Canvas, 130.8 x 193cm, 1959


리뉴얼 때문인지, 오랜만에 방문해서인지 첫번째 전시실부터 조금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의 탁 트인 듯한 공간에 벽이 생겼고 작품을 두 어 점 더 걸 수 있는 점은 좋았다. 다소 낯선 느낌의 초기작으로 시작되는 전시. 사실 초기작이라기 보다는 작업의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는 1964년 이전 작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231122925.jpg 작품, Oil on Canvas, 130 x 194cm, 1964


내게 좀 더 익숙한 후기작들에 비해 조금은 정제되지 않은 듯한 거친 이미지와 어두운 색감은 약간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소 작가의 그림을 보면 참 간결하고 맑은 느낌이 들고 그래서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이 곳의 그림들은 난해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231123708.jpg 작품, Oil on Canvas, 130 x 164cm, 1962



231123033.jpg 해토(解土), Oil on Canvas, 130 x 162cm, 1962


포스팅을 하면서 느낀 건데 자꾸 보다보니 이 그림들도 정제되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거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화면을 칼로 째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무언가에 억압된 상태로 몸부림 치는 듯한,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이 진한 원색들의 섞임으로 해소되는 것 같은 시원한 기분도 든다.


231123147.jpg 작품, Oil on Canvas, 130.8 x 194.4cm, 1964


231123820.jpg 작품, Oil on Canvas, 136 x 194cm, 1964


전시 설명에는 "국가의 상실, 참담한 전쟁, 남북분단, 이데올로기의 갈등 등 20세기 한국 근대사를 구성한 역사적 현실과 조우하며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같은 절대성을 일깨운다."라고 하는데 아직 그렇게까지 무거운 주제로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분명 보다보면 중후함 속에 녹아있는 힘찬 기운은 느낄 수 있다.


ㅇ.jpg 산, Oil on Canvas, 136 x 211cm,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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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Oil on Canvas, 100 x 80.5cm, 1958 / 계곡, Oil on Canvas, 162 x 130cm,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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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Oil on Canvas, 80 x 100cm, 1956 / 10-7, Oil on Canvas, 35 x 45cm, 1940


2층에는 아카이브와 사진, 영상물들 위주로 전시되어 있는데 나는 이 아카이브 섹션이 참 좋다. 우리는 좋아하는 화가는 있어도 정작 그 화가가 어떤 걸 좋아했는지, 누구랑 어울렸는지, 심지어 얼굴도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렇게 작가의 미술 내적인 그리고 외적인 아기자기한 정보들을 보면 좀 더 예술가로서의 작가를 넘어 사람으로서의 작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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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시실은 유영국 작가의 특색을 정말 잘 나타내는 아름다운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항상 느끼지만 들어갈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전시 공간의 아우라도 그 아름다움에 한 몫 더한다. 높은 층고에 깨끗하고 넓은 흰 벽면, 입구 반대편에서 들어오는 자연광 등 미술품이 놓여 있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가운데 의자가 있어 조금 더 오랫동안 편하게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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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Oil on Canvas, 129 x 129cm, 1968 / 원(円)-A, Oil on Canvas, 136 x 136cm,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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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円 A), Oil on Canvas, 136 x 136cm, 1968 / 작품, Oil on Canvas, 130 x 130cm, 1967


도형의 기하학적 배치, 평형, 대칭을 통해 조형미가 드러나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완벽한 대칭을 벗어난 변형들이 곳곳에 녹아있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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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Oil on Canvas, 136 x 136cm, 1973 / 작품, Oil on Canvas, 136 x 136cm,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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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ㅤ작품, Oil on Canvas, 136 x 136cm, 1970 / 작품 (라라라), Oil on Canvas, 136 x 136cm, 1968


전시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은 거의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또박또박 쓰는 서명조차 가운데에 되어 있다. 처음에는 작가가 유작이 될 것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이런 구도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지막을 직감했다기보다는 또다른 연작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이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아쉬움이 남았다.


ㅇㅇ.jpg 작품, Oil on Canvas, 105 x 105cm, 1999


시간적, 공간적 거리가 가까운 윤형근전과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화풍이지만 담고 있는 주제와 색의 사용에 있어 각자의 특색이 뚜렷하여 대조가 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또 얼마나 좋은 것을 보여주려고 이런 전시를 한 달 남짓밖에 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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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ㄹㄹ.jpg 유영국: 삶과 작품, 비디오, 9분 9초, 제작: 국립현대미술관, 2016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는 외적인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몬드리안의 이야기는 참 식상하고 진부한 내용이지만 그만큼 듣는 순간 새삼스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노력을 어느 정도 함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반 이상은, 아니면 그보다 더,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에 더 매달리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게 될 것 같은 안정감 속에 두려움이 생긴다. '진정성'을 강조한 윤형근 작가의 그림이 떠오른다고 했던 것도 이 대목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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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덧붙이면, 국제갤러리 뒷뜰과 3전시실로 이어지는 골목이 좋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고난 뒤의 여운을 조금 더 오래 가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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