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갤러리 현대 신관. 라포르 서커스. 박민준.

18년 10월.

by bincent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018. 11. 1. 0:38 작성.


20181028_130403_556_204.jpg Parade for Rapo, Oil on Canvas, 210 x 294cm, 2016-17


오랜만에 갤러리를 찾았다.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차를 갖고 나올 일이 있었는데 여지 없이 사간동, 소격동을 들렀다. 지난 포스팅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림을 본 지 한 달이 지나면 꼭 발걸음을 그 동네로 떼게 된다. 한남동, 평창동, 청담동, 좋은 곳도 많은데 항상 그쪽으로 먼저 향하게 되는 것은 서울관을 중심으로 늘 괜찮은 전시들이 있기 때문에 큰 생각없이 들러도 언제나 보기 좋은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생각을 하고 나섰다. 학고재의 컬렉션 전시와 권순관 작가의 전시도 끌렸고 갤러리 현대의 '색면추상', 금호갤러리의 NEW WAVE III, 뭐 하나 지나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다녀온 뒤 하나씩 차근차근 써보려고 하니 그 중 갤러리 현대 신관의 '라포르 서커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20181028_131018_019_167.jpg The Birth of Death, Oil on canvas, 162 x 120cm, 2017


평소 원색이 다채롭게 쓰이고 화려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림을 좋아한다. 무채색이나 차분한 이미지가 줄 수 없는 생기와 경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김종학 화백을 굉장히 좋아하는 이유도 작품에서 그런 에너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의 대표 이미지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bgs_20160907155037.jpg 김종학, 꽃무리, 2012, 출처 : BNK아트갤러리


첫 공간에서 볼 수 있는 3개의 조각상은 마치 이 전시를 반겨주는 듯 하다. 형형색색의 받침대 위에 깔끔하게 흰 색으로 만들어진단원들은 높이 떠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동시에 외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 벽면에 써있는 '라포르 서커스' 책의 발췌 내용은 정말 와닿는다.



20181028_132003_541_266.jpg
20181028_132015_131_551 (1).jpg Statue of Elena, Urethane Resin, Gold Leaf, Colored Wood, 246 x 27 x 27, 2018
image_6660572541540996036075.jpg 사실 저 글귀가 마술이 아니라 '미술'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까 마술이다. 뭐 그래도 공감이 아예 안 가는 건 아니다....


2층에 가면 전시장 가운데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다소 불편한 의자와 함께 책이 놓여있다. 앉아서 첫번째 챕터를 읽었는데 상당히 몰입감이 있었다. 곡예를 하는 아슬아슬한 모습과 놀라는 관중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판타지에 관심이 많이 없는 편인데도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20181028_130744_422_142.jpg


정말 좋았던 점은 읽다 고개를 들어 그림을 보고 눈을 감고 조각들을 떠올리면 정말 그 세계에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관람객도 거의 없어 나 혼자 연극의 중심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IMAX에서 인터스텔라를 보았을 때보다, 4D랍시고 의자가 움직이고 바람을 쏴대는 것보다 훨씬 소박하지만 살에 닿는 입체적인 전시가 아닌가 싶다.



image_7640209481540996668317.jpg Bravenum, Oil on Canvas, 162 x 120cm, 2018


image_8732140031540996890881.jpg
image_6327787111540996981692.jpg
Rapu-At the Center of the World / Rapu-Aika, Oil on Canvas, 35.5 x 28cm, 2018




image_1880168091540997326465.jpg
image_5630283271540997594407.jpg
Rapu-Ritual, 45 x 35.5cm / Rapu-Fireworks in the Night Sky, Oil on Canvas, 53 x 45cm, 2018


그 분위기에서 조금 더 진득하니 책을 읽고 싶었는데 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에는 첫 챕터에 나오는 맹인 곡예사 조각이 크게 설치되어 있다. 방금 읽었던 내용의 주인공이 바로 눈 앞에 튀어나온 듯 하다. 갤러리 설명에 따르면, "극명한 현실과 꿈 속에 나올 법한 환상이 하나의 공간에 채워지는 이번 전시는 관람객들을 작가의 상상 속 마술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빠져드는 것 같다.


20181028_130505_851_838.jpg Blind Acrobat, Polyester resin, 180 x 109 x 130cm, 2018



20181028_130445_805_646.jpg Pantheon, Oil on Canvas, 210 x 291cm, 2016-17


image_4153062751540998807190.jpg Rapu-Rapo's Last Dance, Oil on Canvas, 72.5 x 60.5cm, 2018



서구 고전 회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16,17세기의 작품들이 떠오르는 그림들이 많았다. 집에 와서 곱씹어보니 책도 다 읽지 않고, 고전 회화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다시피해서 이번 전시를 100% 향유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든다. 12년, 15년에도 개인전이 있었는데 다음 번에 전시를 한다면 좀 더 반가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갤러리현대 #라포르서커스 #박민준 #김종학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시작. 18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