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현, 60603, LOVOT LAB, Yuge Zhou 등
아크앤북 ARC N BOOK. 첩첩삶중. 윤두현, 60603, LOVOT LAB, Yuge Zhou, 윤여준, 김윤하, House of Collections. 18년 11월.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018. 12. 2. 14:43 작성.
최근 오픈한 아크앤북에 들렀다. 회사와 가까워 이 곳을 지나칠 일이 많은데 언젠가부터 공사를 하고 있길래 그냥 식당이나 카페가 생기려나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윤곽이 드러나면서 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심 좋아했었다. 오픈을 하고 보니 그냥 서점이 아니라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큐레이팅 서점이란다. 일상, 영감, 주말, 스타일, 네 가지 테마로 되어 있고 각 테마마다 주제별로 책이나 잡화들이 있다.
미술 서적 쪽을 보니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 서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출판사별, 주제별로 책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했으나 조금 중구난방인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네 가지 테마를 가져가기 위함인지, 미술 관련 책인데 다른 섹션에 놓여져 있어 헷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서점과 비교했을 때 좋은 점들이 더 많은 곳이다. 곳곳에 배치된 그림들, 책들을 아치 모양으로 쌓아 붙여 만든 통로, 테마별로 번잡스럽지 않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구성 등. 확실히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림 렌탈을 서비스하는 오픈 갤러리에서 작품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도 공간의 취지와 잘 맞는 부분이다.
가까운 곳에 이런 공간이 생겨 참 반가운 마음이 크다. 벌써 몇 번이나 들러 구경도 하고 책을 사기도 했는데 우연히 건물 1층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항상 바깥에서 바로 지하로 가다보니 못 보고 지나쳤다.
첩첩삶중. 전시 제목이 재미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온 몸으로 공감했을 만한 제목이다. “현대인의 삶은 마치 고비가 굽이굽이 몰아치는 산 속과 같고,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우리는 험한 산세에서 헤매며 어쩌면 마주할, 혹은 마주하길 희망하는 옹달샘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목마름이 해소되길 기대하며 행복을 꿈꾼다.”는 전시 설명의 일부가 마음에 와닿는다.
아쉬운 점은 많은 이의 공감을 살 만한 주제임에도 그것이 작품, 설명, 구성 등에 충분히 녹아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 작품 자체가 다소 난해한 편이다. 대중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며 회화가 아닌 설치나 미디어 아트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작품을 보았을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째로, 이런 경우 자세한 설명이 많은 도움이 되곤 하는데 그 부분도 조금 답답했다. 앱까지는 아니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브로셔나 종이에 쓰였다면 점심 때 커피 한 잔 들고 “목마름을 해소”하러 온 사람들이 훨씬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문지만한 크기에다 양 옆으로 펼치기까지 해야하는 책자라니! 일부러 이런 불편함을 유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심지어 작품 캡션도 없고 도대체 누구의 작품인지, 제목은 무엇인지는 그 대문짝만한 책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세번째는 공간 구성 등의 제반 사항인데 넉넉지 않은 공간 때문인지 작품들이 구겨져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House of Collections의 카페트, 거울 시리즈는 차단봉 때문에 가까이서 보기도 힘들다. 바닥에 놓여진 작은 그림들이나 벽면에 있는 거울은 감상이 거의 어렵다
카펫이다보니 훼손에 대한 우려가 있을 법은 하지만 펜스에, 만지지 말라는 팻말에.. ‘우리는 관람객과의 거리를 최대한 유지할 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관람객도 간혹 있지만 예쁘게 디자인 된 보송보송한 카펫에 구둣발을 올려놓을 사람이 있을까.
작품 하나하나는 조금씩 뜯어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기억에 남는 건 스크롤 폭포. “스크린 표면에서의 스크롤링이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정보를 부분적으로 발췌하고 분별없이 편집하는 방식으로부터 통제된 정보인지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시의적절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표현 방식 또한 훌륭하다.
60603 x LOVOT LAB, 스크롤 폭포와 무지개 Scrollfall and Rainbow, 800 x 2,300mm / 800 x 2,100 x 800mm, Digital Print on PVC Flim / Water Piple, Wood, T8 Tube, LED, Electric Circuit
가까이서 스크롤 무더기를 보고 있으면 혼란스럽고 뒤돌아서면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스크롤 커튼을 치면 또다른 스크롤. 그 스크롤을 헤치면 또 다시 나타나는 스크롤.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너무 얇은 감자칩 같은 단편적인 정보를 아무 생각없이 씹어 삼키고 소화가 되는지 안되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행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보를 음미하고 감상하고 분석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버린 것 같다.
갈수록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가고 어떤 사건이나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논리와 배경지식을 갖고 판단하는 사람도 줄어간다. 커튼은 입원실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스크롤, 넘치는 정보에 눈과 귀가 닫혀가는 우리는 병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생각까지 반영된 작품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다가오게 만드는 현실이 반갑지는 않다.
그밖의 작품들.
“반복되는 삶의 주기와 도시의 연극성과 구조를 시사”하는 이 작품은 중앙의 큐브에 앉아서 볼 수 있다. 뉴욕 지하철에서 촬영한 수백 개의 영상을 모았는데 쳇바퀴 돌듯 움직이는 사람들, 영원히 돌 고 있을 것만 같은 모습들, 출근을 하는지 퇴근을 하는지,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모습들은 전시의 주제, 우리 삶에도 잘 부합한다. 기를 쓰고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는 있는데 가운데 큐브에 앉아서 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법이 될 수 있다는 친절함 안내는 없다.
검색을 해보니 아크앤북이 ‘핫플레이스’라고 많이 소개가 되어 있던데 핫플레이스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힙한 곳, 힙플레이스는 더 싫다. 핫하고 힙한 만큼 금방 식고 본질은 잊힌 채 껍데기만 소비되고 어느샌가 전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 핫플, 힙플인 것 같다. 아직 시작이라 조금은 설익은 느낌이 있지만 이 공간은 아름답고 멋있게 꾸며질 잠재성을 충분히 갖고 있는 장소 같다. 다른 여러 '힙한' 곳들처럼 타버리지 않고 은은한 모닥불처럼 오래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