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영, 노경희, 시원상, 이영지, 한수정.
2018년 5월 6일 instagram(bincent.kim) 작성
출근길 미어터질 듯한 엘레베이터 대기줄에서 손이 심심하기도 하고 안 친한 사람과의 어색한 눈인사도 싫어 아트허브를 자주 본다. 좋은 전시는 항상 있지만 전시기간이 끝나가거나 너무 멀거나 막상 주말에 귀찮다던가 하는 핑계로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엔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고 심지어 '휴식'이라는 주제까지 마음에 와닿아 가게 되었다.
특이하게 필갤러리는 월요일이 아닌 공휴일에 휴무라 토요일을 놓치면 방문이 어려운 곳이다. 하필 가려고 했던 날이 근로자의 날이라 은행은 쉬고, 병원은 하고, 나는 쉬는데 갤러리는 어떤지 일요일부터 궁금했었다. 그런데 일요일은 공휴일이라 확인을 할 수 없었고 월요일에도 대표 부재중이다, 회의중이다, 힘들게 오픈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소비자연맹에 주차를 하면 된다는 말을 잊고 갤러리 앞에서 또 우왕좌왕 하며 전화를 했더니 정말 감사하게 갤러리 앞 차를 빼주신다고 한다.
우여곡절 방문한 갤러리.
※가벼운 아트북에서 다시 찾은 작품 제목의 storling은 strolling의 오타가 아닐까...
그림이 좋았다.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고 전문가가 아닌 내 수준에서 보아도 깊이가 있고 아름다운 그림들이었다.
자연이 종이 위에 예쁘게 녹아있었고 철학적, 미학적, 미술사적, 정치적, 사회적 사유나 식견을 많이 요구하지도, 어려운 설명으로 포장되어 있지도 않았다.
평소 그림을 볼 때 생각할 거리가 많고 여러 해석에 대해 열려있는 추상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열정이 식어가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고 신진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어려운 그림들과 그보다 더 어려운 해설을 보면 미술에 대한 애정에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솔직한 표현에 더 감동 받았다.
게다가 갤러리스트가 정말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같이 대화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전시에 가면 업계 분들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인사도 나누지 않고 시종일관 무뚝뚝한 자세로 '사지도 않을거면 대충 보고 나가'라는 표정으로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간 학생처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 곳에는 미소로 관람객을 맞아주고 편안하게 배려받는 느낌을 주는 분이 있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수풀이 우거지고 형형색색의 식물이 어우러진 그림 사이에 실제 화분이나 꽃을 갖다 놓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말에 바깥에 조금 있다는 재치있는 응수까지.
이전에 보았던 좋아하는 그림들이 많이 떠올라서 추억에 잠길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시를 다닌지 얼마 안됐을 때 보았던 박종필 작가의 극사실주의 꽃, 정말 좋아하는 김종학 작가의 설악산 풍경, 여기저기서 많이 본 김지원 작가의 맨드라미, 이동욱 작가의 풍선 등, 한참 쏘다닐 때 보았던 그림들이 한 두 점씩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3년 가나아트스페이스의 BETWEEN 전시에서 보았던 것 같은데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2010-2012년 사이에 제작된 between the fresh 시리즈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한산해서 좋았지만 갤러리에 가기 전 들렀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소위 '핫플'이라는, 야채에 소스 좀 뿌리고 2만원씩 받는, 브런치 카페에는 그 많은 좌석에 한 명 앉을 데가 없고 발렛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차를 넣고 빼고 있는데 이렇게 좋은 컨텐츠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아직 대중화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