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가 가르쳐준 지속의 의미
금요일 오후, 치과 의자에 누워있었다.
마취가 서서히 퍼지는 동안
천장의 무영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 주말도 바다에는 못 가겠구나.
의사는 최소 일주일은 격한 운동을 피하라고 했다.
특히 찬물에서의 수영은 절대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CT 검사 후 간단한 수술이 진행됐다.
살을 째고 뭔가를 제거하는 과정.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병원을 나서니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했다.
입안에서는 계속 피가 났고,
거즈를 물고 운전대를 잡았다.
마취가 서서히 풀리면서 수술 부위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 혼란스러운 순간,
왜인지 송정 바다가 떠올랐다.
내일 새벽 바다에 나갈 수 있을까.
아니, 무리겠지.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은 가고 싶은데.
이상한 타이밍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 몸이 힘들 때일수록
자유로웠던 순간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요일 새벽 5시 30분.
평소라면 수영복을 챙기며 현관문을 나섰을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들리는 바람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아마 바다는 더 거칠겠지.
핸드폰이 울렸다.
예상했던 대로 수영 친구였다.
"오늘도 안 나오는구나."
"응. 의사가 일주일은 쉬라고 했어."
"알았어. 다음 주에 보자."
전화를 끊고 나니
묘한 안도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올 가을 들어
바다에 나간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9월에는 여러 일정이 겹쳤고,
10월에는 감기가 길어졌다.
그사이 단풍 구경이다, 모임이다 해서
주말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1월 중순이 되어 있었다.
처음 바다수영을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4년 전 겨울, 그 차가운 물속으로
처음 뛰어들던 순간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계속했다. 아니, 정확히는
같이 수영하는 친구의 끈질긴 설득과
반강제적인 픽업 서비스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바다수영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었고, 삶의 리듬이었다.
새벽의 고요함,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
파도 소리,
짠 공기.
이 모든 것이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방식이 되어 있었다.
물론 쉽지 않다.
특히 오래 쉬고 난 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첫날의 두려움이 되살아나고, 변명거리를 찾게 된다.
피곤하다, 춥다, 일이 많다, 날씨가 안 좋다.
하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면 그런 고민들이 씻겨 내려간다.
파도와 함께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평온함이 찾아온다.
일주일 후면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아마 처음처럼 망설여질 것이고,
물은 더 차가워졌을 것이다.
12월이 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부산에 사는 이유 중 하나다.
도시 한복판에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바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송정 앞바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짧은 인사와 격려.
창밖을 보니 해가 기울고 있다.
내일도 쉬어야 한다. 하지만 괜찮다.
바다는 늘 그곳에 있을 것이고,
나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두렵더라도.
어쩌면 삶의 많은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꾸준함이란 매일같이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멈췄다가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
포기하지 않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다음 주 토요일 새벽 5시 30분.
나는 다시 수영복을 챙길 것이다.
친구가 문 앞에서 경적을 울릴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어두운 도로를 달려 바다로 향할 것이다.
차가운 물에 대한 두려움과
그 안의 따뜻함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