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 물의 침묵

어느 토요일 저녁, 통영에서 날아온 비보

토요일 저녁 7시쯤이었다.


핸드폰에 뜬

동호회 단체 카톡방의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다음 날 열릴 예정이었던

통영 트라이애슬론 대회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오후 3시경, 연습 수영 도중

40대 남성 참가자가 물속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일요일 새벽, 그 푸른 바다를 향해 출발할 예정이던

우리 동호회 신입회원은 가족들과 함께

이미 통영에 도착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 허탈하고 복잡한 마음일 것이리라.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저 멀리 통영 바다에도 같은 어둠이 내렸을 것이다.



몇 년 전, 같은 바다에서 나도 헤엄쳤다.


통영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코스를 자랑한다.

맑고 투명한 바다, 섬과 섬 사이를 달리는 해안도로,

그리고 열정적인 지역 주민들의 응원.


작년 TV 예능 프로그램 '무쇠소녀단'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 후로 참가 신청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올해 나도 접속과 동시에 신청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몇 분 만에 마감되는 인기였다.


하지만 그 인기 속에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이 스포츠의 본질적인 위험성이었다.



출발 신호가 울리면 바다는 전쟁터가 된다.

과거에는 수백 명의 선수가

동시에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최근에는 5명의 선수가 5초 간격으로 출발하는

롤링스타트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전쟁터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하얀 물보라가 일고, 팔과 다리가 엉킨다.

누군가의 발길질에 옆구리를 맞고,

숨을 쉬려 고개를 들면 또 다른 선수의 팔이 얼굴을 스친다.

수경이 벗겨지고, 방향을 잃고,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전쟁을 치른다.

혼자서, 철저히 혼자서.


연구에 따르면 트라이애슬론 사망 사고의

70~90%가 수영 구간에서 발생한다.

미국 데이터로는 참가자 10만 명당 1.74명이

심정지나 사망에 이른다.

마라톤보다 약 2배 높은 수치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이 익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심장이 멈추는 것이다.



수영 유발성 폐부종(SIPE)이라는 현상이 있다.

찬물에 들어가면 말초 혈관이 수축한다.

혈액이 심장과 폐로 몰린다.

여기에 꽉 끼는 웻슈트의 압박이 더해지고,

출발 직후의 격렬한 심장 박동이 겹쳐진다.

폐혈관의 압력이 급상승하고,

모세혈관이 터지면서 폐포에 체액이 차오른다.

물속이 아닌 폐 속에 물이 차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율신경의 충돌'이다.

찬물에 얼굴이 닿으면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심박수를 낮추려 한다.

'포유류 잠수 반사'라는 생존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기의 긴장과 흥분은 심박수를 높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 두 신호가 충돌할 때,

심장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때로는 멈춘다.


특히 40~60대 남성들이 위험하다.

평소 증상이 없던 관상동맥 질환,

숨어있던 심장 비대증,

알지 못했던 부정맥.

이런 것들이 극한의 순간에 폭발한다.


그리고

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가장 참가비율이 높은 연령층이

바로 이 '40~60대 남성'들이다.



첫 대회의 기억이 생생하다.


2022년 5월, 대구.

나는 생애 첫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가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대회장으로 향했다.

웻슈트를 입고, 수경을 쓰고, 번호표를 붙였다.

주변의 선수들은 다들 여유로워 보였지만,

나는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드디어 첫번째 경기인 수영.

출발 신호와 함께 수성못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5분도 안 되어 지옥을 맛보았다.


숨이 막혔다. 정확히 말하면 숨을 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물을 마셨고, 패닉이 왔다.

포기하고 싶었다.

아니,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내 뺨을 후려친다.

"야! 정신 차려!"

고개를 들어보니 같이 참가했던 친구다.


나중에 들으니 내 수경은 이미 벗겨져

머리 위에 대롱거리고 있었고,

나는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의 따귀가 아니었다면,

나는 첫 대회에서 구조대에 실려 나왔을 것이다.


그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물의 공포. 숨을 쉴 수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살고 싶다는 본능.



트라이애슬론은 묘한 매력이 있다.


수영, 자전거, 마라톤.

세 가지 종목을 연속으로 해낸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력, 전략,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다.


특히 수영에서 자전거로,

자전거에서 러닝으로 전환하는 그 순간들.

온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다리는 굳어있고, 폐는 타들어간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고통과 희열의 경계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살아있음을 느끼려다 죽음을 맞는 것이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사업가이거나,

혹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꿈꾸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탔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러닝화 끈을 묶으며 오늘은 몇 킬로미터를 뛸까 고민했을 것이다.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또 운동 가?"라고 잔소리하면서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배웅하던 아내가 있었을지 모른다.

"아빠 오늘도 철인 되러 가?"라고

장난치던 자녀가 있었을지 모른다.


토요일 저녁,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운동 가방과 젖은 수영복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동호회 카톡방은 침묵에 빠졌다.

누군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하나둘 같은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침묵.

우리는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언제든, 우리 중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나는 창밖의 어둠을 오래 바라보았다.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건강? 성취감? 도전정신?

아니면 단순히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


하지만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다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처럼 모순적인 일이 또 있을까.



물은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들어야 한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평소와 다른 두근거림을.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을.

그리고 무엇보다,

완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진실을.


전문가들은 여러 대책을 제시한다.

40세 이상 참가자의 심전도 검사 의무화.

운동 부하 테스트.

수온에 따른 웻슈트 규정.

구조 인력 확충.

기타 등등.

모두 필요한 조치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겸손함이다. 경외심이다.

그리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 통영 바다는 고요했을 것이다.


대회가 열렸다면

지금쯤 함성 소리로 가득했을 텐데.

출발 아치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을 것이다.


어제까지 설레던 선수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만 돌아가지 못했다.


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히 출렁였을 것이다.

햇빛은 어제와 다름없이 수면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다.

갈매기들은 여전히 하늘을 날았을 것이다.


자연은 무심하다.

인간의 비극에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자연이다.


언젠가 나는 다시 통영으로 갈 것이다.


그 맑은 바다에 다시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다를 것이다.

출발선에 서기 전, 잠시 묵념을 할 것이다.

물에 들어가기 전, 내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숨이 차오르면 멈출 것이다.

힘에 부치면 포기할 것이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승리다.


이번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이다.

취미로 하는 운동이 목숨을 건 도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을 위한 운동이 죽음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완주 메달보다 빛나는 것은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미소다.


트라이애슬론의 진정한 아이언맨은

가장 빨리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토요일 오후 통영에서 떠난

그 선수의 명복을 빈다.


그의 가족에게 위로를 전한다.

어떤 말로도 그들의 슬픔을 덜어줄 수는 없겠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그리고 간절히 바란다.

다시는, 제발 다시는

물의 침묵 속에서 누구도 사라지지 않기를.


우리 모두가 출발선에 선 만큼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기를.


그것이 진정한 도전이고

그것이 진정한 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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