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장, 다른 시간

22년 간격의 두 번역본을 읽으며

책장 앞에 서서 같은 책을 두 권 꺼내 들었다.


1992년판과 2014년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중국행 슬로보트」였다.


출판사도 다르고, 번역자도 다르고, 종이의 질감도 달랐다.

1992년판은 누렇게 바랜 종이에서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났다.

2014년판은 깔끔한 편집과 좋은 종이로 만들어졌고, 가격은 두 배였다.


원본은 같을 터였다. 1980년에 발표된 하루키의 단편소설.

그런데 두 권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기 시작하자, 묘한 일이 벌어졌다.



제목부터 달랐다.


1992년판은 「중국행 화물선」이었고,

2014년판은 「중국행 슬로보트」였다.

원제는 '中国行きのスロウ・ボート'이니 후자가 더 정확한 번역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작품을 '화물선'으로 기억해왔다.


본문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1992년판은 '국민학교'라고 썼고, 2014년판은 '초등학교'로 바꿔놓았다.

'디스코데크'와 '디스코덱'의 차이도 있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단어 하나하나가 모여 전체 분위기를 만들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같은 장면을 묘사한 두 번역의 차이였다.


1992년 유유정 번역본은 이렇다.

"어때요. 학생? 기분이 좋겠습니까?" 하고 그는 나를 바라보지 않겠는가.

나의 수험 번호가 제일 앞번인 탓이었다.


2014년 양윤옥 번역본은 같은 장면을 이렇게 옮겼다.

"거기 학생" 그는 손 끝으로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내 수험번호가 가장 앞인 탓이었다. "기분이 좋을까요?"


같은 원문이었다. 하지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전자는 조금 딱딱하고 격식을 차렸다.

"바라보지 않겠는가"라는 표현에서 1990년대 초반의 문체가 느껴졌다.

후자는 더 간결하고 현대적이었다.

"손 끝으로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는 구체적인 묘사가 장면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계속 읽어 내려갔다.


1992년판에서는 이렇게 이어졌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중국인을 존경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2014년판은 같은 부분을 이렇게 옮겼다.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고개를 저었다.

"중국인을 존경할 수 있을까요?" 나는 다시한번 고개를 저었다.


"얼굴이 새빨개진"과 "얼굴을 붉히며"의 차이.

"황급히"와 "급히"의 차이.

미묘했지만 분명했다.

전자는 좀 더 설명적이었고, 후자는 간결했다.


선생님의 말도 달랐다.


1992년판: "그러니까" 하며 그는 앞쪽으로 돌아섰다.

나를 바라보던 눈들도, 그제야 교단 쪽으로 되돌아갔다.


2014년판: "그러므로", 그는 다시 정면을 향했다.

아이들의 시선도 그제서야 겨우 교단쪽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니까"와 "그러므로".

"앞쪽으로 돌아섰다"와 "정면을 향했다".

"나를 바라보던 눈들"과 "아이들의 시선".

같은 의미였지만, 언어의 결이 달랐다.



나는 두 책을 번갈아 읽으며 밤을 보냈다.


1992년판: "됐습니다.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십시오."

우리는 모두 얼굴을 들고 가슴을 폈다.

"그리고 자존심을 가지십시오."


2014년판: "자아. 이제 고개를 들고 가슴을 쭉 펴세요"

우리는 고개를 들고 가슴을 쭉 폈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됐습니다"와 "자아".

"얼굴을 들고"와 "고개를 들고".

"자존심"과 "자부심".


어떤 문장은 1992년판이 더 좋았고,

어떤 문장은 2014년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번역자의 선택이 달랐고,

그 선택이 만들어낸 작은 차이들이 쌓여 각기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 두 시기를 모두 살아왔다는 것을.


1992년의 말투로 살았고, 2014년의 말투로도 살았다.

그 사이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언어도 조금씩 변했다.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는

이제 '초등학교'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 않겠는가"라고 쓰던 시대는 지나갔고,

더 간결한 문장을 선호하는 시대가 왔다.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었다.

시간을 옮기는 일이기도 했다.

같은 원문을 읽더라도,

번역자가 살아온 시대, 사용하는 언어의 결이 다르면 전혀 다른 작품이 탄생했다.


요즘 사람들은 번역이 곧 불필요해질 거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실시간 통역이 가능해지고,

번역도 기계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것이라고.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젯밤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나는 확신했다.

번역에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남을 것이라고.


번역자의 선택, 그가 살아온 시간, 그가 느끼는 언어의 온도.

그런 것들이 문장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황급히"와 "급히" 사이에는,

"자존심"과 "자부심" 사이에는,

단순한 단어의 차이가 아니라 한 시대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나는 두 권의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았다.

나란히, 같은 자리에.

같은 이야기지만 다른 시간을 담은 두 권의 책.

언젠가 또 꺼내 읽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는 또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을 테고,

같은 문장을 읽으며 또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이 좋은 작품의 힘이고, 번역이 가진 오묘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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