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목적지를 잊고 안주하는 것에 대하여
오늘은 '본의 아니게' 출근이 늦었다.
올해 초 이사를 했는데, 가까운 거리에 전철역이 있다.
원래 열차 타는 걸 좀 좋아하기도 하고,
그간 납부한 세금의 혜택도 좀 누리고 싶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철을 타고 출근하고 있다.
서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부산의 경우 4개의 전철 노선, 국철 동해선, 부산김해경전철 등이 있으며
당연히 이들 간 환승이 가능하다.
집에서 2호선을 타고 1번 환승을 한 후 3호선을 타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내가 집을 나서는 시간은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인데
당연하게도 이때는 사람이 꽤 많다.
특히 처음 타는 2호선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2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는 역의 경우는
3호선 노선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므로
약 절반 정도의 확률로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다.
하지만 2호선의 경우는 노선의 중간이라서
출근 시간에 자리에 앉을 확률은 매우 낮다.
참고로, 내 경우는 한 번도 앉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2호선을 타자마자 앉아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서서 전동차 옆 칸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것도 내가 가장 선호하는 가장 끝자리 좌석에서.
전철 출근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출근 시간에 좌석에, 그것도 명당인 끝자리에
드디어 앉게 되었다.
마침 인근에 나이 드신 분이나 임산부도 계시지 않아서
염치불구하고 냉큼 앉아버렸다.
너무 편안하고, 너무 시원했다.
그리고 왠지 감동적이었다.
오늘 하루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기도 했고.
아, 이대로 계속 앉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참 좋았다. 참 행복했다.
그런데... 안내방송이 뭔가 이상하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아뿔싸. 환승역을 지나쳐버렸다. 그것도 2구간이나.
'잠깐'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생각보다 꽤 길었던 모양이다.
허겁지겁 다음 역에서 내려 돌아오는 전철을 탔다.
그러다 보니 출근 시간에 조금 늦어버렸다.
전철은 '이동 수단'이다.
전철을 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동은 목적지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는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반드시 내려야 한다.
전철 안이 아무리 시원하고 편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좌석에 앉았다 하더라도.
하차 후 또다시 땡볕 아래를 걸어야 할지라도.
그래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를 망각하고 순간적인 편안함에 빠져서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할 경우
목적지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고
이를 되돌리는 데 추가적인 시간과 노력이 든다.
오늘의 나처럼.
문득 반성해본다.
지금 나는 편안함에 빠져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