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재시작 사이에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공책 귀퉁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짧은 문장을 적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이를 먹으며 돌아보니
그것 말고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
평생 글을 쓰며 살기로 마음먹었고,
지금은 변호사로서 소송서면을 작성하며 살아간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매일 문서를 작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것들을 하나의 콘텐츠로 엮고 싶었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책이다.
수년 전부터 '책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몇 차례 시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실패했다. 지금까지는.
첫 번째 도전은 당시 유행하던 주제를 선택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남의 작가에게 수업을 들었지만,
그 분야를 이해하기에 내 지식은 보잘것없었다.
관련 법령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기존 책들의 내용을 짜깁기하는 수준이 되었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쓴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억지로 써낸 문장은 텅 비어 있었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교훈을 얻어
내가 가장 잘 아는 전문 분야를 주제로 삼았다.
이번에는 꽤 많은 원고를 작성했다.
하지만 '전문가로서의 완벽주의'가 발목을 잡았다.
모든 것을 다 담으려다 보니 중심을 잃었고,
지엽적인 문제에 빠졌다.
게다가 그즈음 나는 그 분야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원고 집필 자체도 슬럼프였는데, 집필 동기마저 사라진 셈이었다.
2019년 가을의 일이다.
두 번의 도전. 적지 않은 비용. 그러나 실패.
이런 참담한 결과를 직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실패의 무게는 무겁다.
특히 그 실패를 직면하는 일은 더 어렵다.
나는 몇 년 동안 그 시간들을 돌아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였다.
지금이 2025년 10월이니, 거의 6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삶은 나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일터에서의 혼란, 개인적인 위기, 예기치 못한 상실들.
숨 가쁘게 이어진 시간들은 나를 지치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했다.
전환점은 어느 날 법정에서 만난 한 사람에게서 왔다.
그는 사업 실패 후 회생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상담을 마치며 담담하게 말했다.
"변호사님,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니더라고요.
다시 시작하지 않는 게 부끄러운 거죠."
그 한마디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동안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다시 시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첫 번째 실패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선택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실패는 완벽을 추구하려다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실패는 그 이후 6년 동안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다시 책상에 앉는다.
2025년 10월 어느 가을날 오후, 창밖에는 낙엽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다.
완벽한 책이 아니라 진솔한 이야기를,
전문가의 시각이 아니라 한 사람의 경험을,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일상의 깨달음을 담으려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한 번 더 실패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다만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를 글로 남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실패와 재시작의 연속이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책을 쓰는 일은 단순히 글자를 쌓는 작업이 아니다.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내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한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어설프더라도, 그건 나의 진짜 모습이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미소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혹은 잠시 멈춰 자신의 삶을 돌아볼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내 펜은 다시 움직인다.
가을 저녁 햇살 아래,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이번엔 끝까지 써보자고.
나를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