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와 함께 다시 읽는, 헌신과 체념 사이
중학교 시절,
팝송 가사를 손으로 옮겨 적고
사전을 뒤적이며 번역했다.
요즘 중학생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단어의 뜻은 알았지만 문장의 의미는 몰랐다.
"All I Want Is You"라는 제목은 간단했다.
그런데 왜 그 짧은 선언이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을까.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단어는 빠르게 외울 수 있지만,
문장은 살아봐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U2의 보컬 Bono가 이 노래를 쓴 건
아내 Ali를 위해서였다.
그들은 열두 살에 만나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었고,
스무두 살에 결혼했다.
당시 Bono는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자신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Ali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문제 많은 부분까지도 사랑한다고.
금반지 위의 다이아몬드보다 당신을 택하겠다는 고백은
그렇게 그녀의 목소리로 노래가 되었다.
젊을 때는 이 말이 조금 순진하게 들렸다.
하지만 살다보니 조금 달라졌다.
서로의 사정을 통째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을 지나오고,
약속의 무게가 말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화려한 조건을 걷어내고도 남는 마음이 무엇인지.
누군가의 옆자리를 지키겠다는 고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결국 "원하는 건 너다"라는 말은
무언가를 더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덜어낼 것을 고르는 용기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전에 나온
"With or Without You"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너 없이도 살 수 없고, 너와도 살 수 없다(I can't live with or without you)"
한때는 모순처럼 들렸던 이 문장이
지금은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일은 의미가 있지만 때로는 나를 망가뜨리고,
관계는 지탱이 되지만 어떤 날은 숨이 막힌다.
U2의 인터뷰, 기사 등에 따르면이 노래는 사실 거의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멤버들이 여러 편곡을 시도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하려 했고,
매니저마저 너무 이례적이라며 싱글 발매를 반대했다.
그런데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노래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노래 속 화자는 기다리면서도 갇혀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계속 내어주고,
그 헌신이 상대를 살리면서 동시에 자신을 조금씩 소모한다.
사랑은 종종 그렇게 구원과 형벌이 같은 손에 쥐어져 있다.
Bono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고백했다.
Ali는 지금보다 더 단순한 삶을 원했을 거라고.
그녀는 결코 "그냥" 여자친구가 아니었고,
"그냥" 아내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에 세 명의 남자가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을 좋아했지만, 그 남자들이 자기 남편을 전 세계로 데려가고 있었다.
두 노래는 서로를 비춘다.
하나는 조건을 비워낸 사랑을,
다른 하나는 조건을 비우다 지친 사랑을 말한다.
어느 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사람만을 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바람을 맞아도, 쌓여가는 일정 속에서도,
옆에 있는 그 사람이 전부라고 믿고 싶다.
또 어느 날은 손이 묶이고 몸이 멍든다.
더 얻을 것도 더 잃을 것도 없을 때, 남는 것은 버틴 자리뿐이다.
그 사이에서 배운다.
헌신은 방향이고 체념은 속도라는 것을.
방향을 잃지 않되 속도를 조절하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지지 않는 약속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깨질 때 어떻게 다시 합의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Bono와 Ali는 40년을 함께하고 나서 서로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이걸 망치지 말자."
그 문장 안에는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음악을 다시 듣는 일은
과거의 나를 다시 읽는 일이다.
처음 들을 때는 기타의 잔향만 들렸다면,
지금은 숨소리와 쉼표가 들린다.
"All I Want Is You"의 반복은 주문이 아니라 연습이었고,
"With or Without You"의 고백은 항복이 아니라 보고에 가까웠다.
오늘의 컨디션을, 오늘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일.
같은 노래가 매번 다르게 들리는 이유다.
사전을 덮고 의미를 여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문장이 늦게 도착할수록 오래 머문다.
예전의 나는 번역을 했고, 지금의 나는 이해를 한다.
내일의 나는 이해한 것을 살아낼 것이다.
노래는 이미 거기 있다.
우리는 다만,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듣는다.
All I want is you
https://youtu.be/k0W_ybghFzg?si=W5RKxC6QkwtffCEe
With or without you
https://youtu.be/ujNeHIo7oTE?si=jj5e8Z27ACI57dl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