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마주치지 않았다.
서로 바쁘다는 말을 핑계 삼아 조심스레 거리를 두었다.
그 여백엔 그리움 대신 조심스러움이 자라났다.
가끔은 연락을 썼다 지우곤 했다.
꺼내는 순간 너무 작아 보일까 봐.
혹은 다시 멀어질까 두려워서.
그러던 어느 날, 우연처럼 다시 마주쳤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등이 보였다.
조용히 앉아 있는 그 모습이,
마치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놀라지도 묻지도 않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매일 비 오는 꿈을 꿨어.”
나는 그의 손등을 바라봤다.
텅 빈 손인데도 무언가를 꼭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비가... 아직 멈추질 않아서.”
그의 말끝은 살짝 떨렸지만 울지 않았다.
나도 울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빈손 위에 살짝 손을 얹었다.
꼭 잡지는 않았다.
다만, 여기에 있다는 걸 말해주듯이.
우리 사이엔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그 순간,
가장 조용한 다정함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그날, 그가 내게 건넨 마지막 눈빛.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조용한 눈빛.
말보다 깊었던 그 눈빛이.
나는 그냥 그날처럼.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마주하는 날이 온다면,
아마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저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비가 그칠지 아닐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며칠 뒤였다. 햇살이 조금 따가운 날이었다.
그늘을 따라 걷다가 익숙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괜히…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이유는 없었지만
어쩌면 마음이 먼저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문을 열자 바람에 커튼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가 거기 있었다.
창가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 살짝 웃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가벼운 미소였다.
무언가 정리된 얼굴.
그걸 보는 순간 괜히 마음이 놓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았다.
“요즘엔 비 안 오지?”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신, 가끔 그리운 냄새가 나.”
“비 냄새?”
“아니, 너 냄새.”
그 순간, 나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그가 말한 ‘너 냄새’라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던진 것 같았지만,
그 속엔 이상할 만큼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움처럼 들렸고,
마치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내가 남아 있다는 듯도 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는 늘 그랬다.
다가오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떠나지도 않았다.
내가 혼자 그 말을 곱씹게 될 걸 알면서도
그는 그런 말을 했다.
자기는 다 털어낸 얼굴로
조금은 가벼워진 미소를 지으며.
‘너 냄새.’
그 말은,
마치 어떤 책임도 없이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 같았다.
좋았던 날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립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 조금
기대하게 만드는 말.
그게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진심이 늘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다정함이 아닌 애매함으로.
나는 그를 좋아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얼마나 자주 나 혼자만의 것이었는지를 천천히 되짚었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먼저 다가온 적도 명확하게 거리를
두지도 않았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늘 나만 서 있었다.
그래서 웃음 뒤에 남겨진 건
따뜻함이 아니라
익숙한 외로움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미소를 본 채로
창밖을 바라봤다.
햇살이 조금 따가웠다.
다시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