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우리는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by 바인

그날은 비가 왔다. 처음엔 그저 가랑비였다.
익숙한 골목을 익숙하지 않은 침묵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걸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옷도 마음도 모두 젖어 있었다.

바람은 차갑지 않았는데 이상할 만큼 서러웠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오늘 읽은 책의 내용을 이어 설명하듯 무심하게.

하지만 그 말들 속엔 차가운 비보다

더 깊은 아픔이 숨어 있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한 다정함으로.

나는 그저 들을 뿐이었다.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멀기만 했다.
무너지는 그의 마음을 대신 붙잡아주고 싶었지만,

닿지 않았다.


예상치 못하게 흘러내린 내 눈물이 오히려 미안했다.

내 감정이 앞서버린 것 같아서.


그리고 끝내,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을 택했다.
비는 어느새 가랑비가 아니었다.


며칠이 지났다.

비는 그쳤고 거리엔 다시 평범한 일상이 흘렀다.
나도 그 속에 섞여 움직였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하지만 문득문득 마음 한켠이 젖어 있는 걸 느꼈다.

마른 옷 속에 남은 습기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의 표정과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연락할까, 문자를 보낼까.
수십 번 마음속으로 말을 꺼내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엇이 위로가 될지 몰랐고
어설픈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까 두려웠다.


그날 그가 해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결국 우리는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슬프고, 멀고, 그래서 더 가까운
닿지 못한 마음에 대한 고백이라는 것을.


지금도 가끔, 그날의 비가 내 안에서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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