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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글방 Oct 02. 2023

완도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도착 첫날, 처음 보는 완도의 밤 풍경은 고요했다.


숙소 테라스로 나가자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바다를 뒤로하고 은은하게 불을 밝힌 완도 여객 터미널이 내려다보인다.


완도항 밤풍경


이렇게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여행 준비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엔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싶은 게 숙소 예약을 3일 전에야 했다는 것이다.


유례없이 긴 연휴에 그 많은 숙소 중에 갈 곳 없겠나 싶은 느긋한 마음도 있었고, 여행 시기 조율이 어려워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 이유도 있다.


남편이 다른 때는 일정이 안되니 추석연휴에 다녀오라고 강하게 권했지만 연휴에는 사람에 치이고 주차 자리도 부족해 내키지 않았다.


그냥 가지 말까?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일정이 꼬여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부랴부랴 떠나온 여행이다.


결국 급하게 숙소를 잡은 탓에 중간에 두 번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고, 같은 숙소 내에서도 방을 총 네 번이나 이동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두 군데 숙소를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느라 총 6개의 방에 머물렀다.


원래 완도 10일 해남 18일 일정으로 한달살기를 하려던 건데 결국 따로 다녀오게 돼서 이 먼 길을 두 번이나 왕복해야 한다니 앞이 깜깜하기도 했다.


그래도 무사히 왔으면 됐어,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여행하자 마음먹어본다.




전라남도 지자체 지원 여행은 지원금이 하루 최대 15만 원이다. 물론 실비로 지원이 되니까 안 쓰면 사라지는 돈이다.


숙박비 8만 원, 식비 3만, 교통비 2만 원, 체험비 2만 원, 거기에 방역용품도 하루 2천 원씩 지원해 주니 매일 마스크도 사놓을 수 있다.


하루 숙박비 5만 원, 한 달 체험비 총액이 8만 원인 경남 지역에 비해 지원금이 무척 컸다.


전남은 선정 인원을 적게 뽑아 지원금을 많이 주고 경남은 많이 뽑고 적게 주는 것이다. 각 지역마다 홍보가 잘 되길 원하는 건 같은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잠만 잔 첫날과 달리 본격적인 여행 이틀차, 12000원짜리 전복해물볶음과 카페에서 먹는 장보고빵과 바닐라라떼 너무 맛있다.


카페 달스윗 / 귀빈식당




첫 숙소에서 2박을 한 후 명사십리 해변 앞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체크아웃을 위해 바리바리 짐을 쌀 때만 해도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명사십리 해변을 마주한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맨발에 닿는 모래가 놀랍도록 부드럽다. 물빛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할 정도로 은은하고, 길게 이어진 백사장은 파도에 다져져 발이 빠지지 않아 걷기 좋았다. 4일 동안 다섯 번이나 걸었다.


날마다, 시간대마다 바다의 모습이 다르다. 어느 날은 이름 모를 새가 날아와 한동안 내 앞에서 종종거리다 날아가기도 했다.


은빛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윤슬은 휴대전화 카메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걷다가 바다를 보고, 또 걷다가 바다를 보고, 예뻐서 찍은 후 다 안 담겨 안타까워하다가 비슷한 사진을 여러 장 찍어댔다.


그렇게 명사십리를 걸은 날은 하루 보를 훌쩍 넘겼다.


명사십리 길은 평소 노르딕 워킹 이벤트도 하고 치유의 길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곳을 걷다 보면 저절로 아픈 곳이 다 나을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다 치유될 것 같은, 그런 바다였다.



완도의 명사십리(明沙十里)는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명사십리 해변은 국제 친환경 인증인 블루 플래그(BLUE FLAG)를 받은 곳으로 국내 최초 5년 연속 선정돼 아시아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우수 해수욕장으로도 지정되어 'Special Mention' 상을 받았는데 전 세계 5,000여 개 해수욕장 중 10개소만 지정되는 뜻깊은 상이다.(출처 : 완도군, 해수욕장 3개소 블루플래그 인증 획득 쾌거/metroseoul.co.kr)


내가 지금까지 걸어본 해변 중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데 세계적으로도 좋은 해수욕장으로 인정받은 곳이구나, 새롭게 알았다.


보길도 예송 해수욕장, 청산도 신흥 해수욕장까지 ‘블루 플래그’ 인증을 받은 곳이 완도에 3곳이나 있다니 완도 바다가 유난히 맑고 깨끗한 모양이다.



발목을 넘겨 찰랑거리는 바닷물은 차지 않고 수심도 얕은 편이다. 추석 연휴의 늦은 더위에 아이들도 물놀이를 많이 하고 있었다. 당장 뛰어들어도 될 만큼 해는 뜨겁다. 해변 바로 옆이 숙소였지만 뛰어들 부지런함은 없어 오래 걷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무릎까지만 담가도 시원하다.


평소 걷는 걸 싫어하는데도 바다 풍경이 좋아 자꾸 걷고 싶다. 발바닥에 닿는 고운 모래를 느끼다 가만히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작년에 고성에 갔을 때만 해도 바다를 보고만 있는 게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무 생각 하지 말자는 강박이 없어서 그런지  편하게 바다를 눈에 담는다.





청해포구 촬영장에도 갔다.


많은 사극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이 된 정자에 올라 바닷바람을 느껴본다. 여행메이트 옷을 노랑이로 만들어 입히고 사극 드라마 체험을 시켜본다. 사연 많은 조선시대 여인이 되어 모질게 고신을 당하는 그런 스토리로...


명절 전에 니 사람이 별로 없어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완도는 섬이라서 그런지 어딜 가도 대부분 해안도로를 지나바다와 인접해 있는 여행지가 많아 서울 촌사람이던 내게 여행의 기분을 잔뜩 느끼게 해 준다. 남해 특유의 은은한 바다빛매 순간 시선을 뺏긴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완도의 뜻은 ‘빙그레 웃는(莞) 섬(島)’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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