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의 뇌과학

캐럴라인 윌리엄스 지음 / 이영래 옮김 / 갤리온

by 담담글방

작업실을 얻은 후 가장 큰 고민은 어째서 작업실까지 얻어 나왔는데 왜 일이 더 안 되느냐 하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작업실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어쩌다 자는 날이면 알람 없이 꼬박꼬박 일어나지는 시간에 눈을 뜨고도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게 좋았다.


그래도 열심히 일을 했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글이 안 써져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심각해진 허리 통증 때문인가, 인풋을 안 해서 그런가. 아니면 몇 년이나 누적된 피로 탓인가.


작업실에 있는 동안 기분은 더욱 가라앉고 마감 시간에 쫓겨 아예 밖으로 안 나가는 날도 늘어났다. 그 사이 백신을 두 차례 맞으며 얻은 백신 후유증은 움직이지 않는 나를 위한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고 간신히 이어오던 하루 루틴도 무너지기 일쑤였다.


일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마음껏 쉬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가 심각했다. 문제의 원인은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아직도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어쩌면 가장 단순한 이유를 모른 척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책에서 '걷기'에 대한 내용이 나왔을 때는 심드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걷기 좋은 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움직임의 뇌과학>이라고 해서 좀 다른 게 있을 줄 알았더니.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과학자들이, 연예인들이 걷기 예찬을 하는지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걷기로 인해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한 때 걷기에 매료되어(일상적인 걷기가 아닌 남의 경험 속 걷기에 매료돼 처음 걷기 장소로 산티아고를 택하는 무모함을 보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적이 있었다. 820km를 완주하는 프랑스에서 출발해 스페인으로 이어지는 길의 560km가량(?) 걷다가 베드 버그의 공격에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돌이켜 보면 좋았던 기억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혼자 걷는 길이 지루해서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할 때를 빼고는 산책을 즐기지 않는다. 오래 걷는 대신 운동 효과를 높이기 위해 차라리 짧고 굵게 달리기를 선택하곤 한다. 그리고 고작 주 1회 하는 필라테스로 숨쉬기 운동보다는 꾸준히 하는 운동이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자부심도 생길락 말락 하는 중이다. 필라테스 만으로는 운동 효과가 적어서 헬스라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고강도 운동의 함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매일 부지런히 헬스장에 들르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의기양양해졌을 것 같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우리가 움직임을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운동, 그러니까 내내 앉아 있다가 잠깐 시간을 내어 진지하게 임하는 운동으로는 상황을 만회할 수 없다...
하루 중 어느 시간에 고강도 운동을 하는지는 관계가 없다...
사실 '운동 폭식'은 움직임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운동 전문가인 케이티 보먼은 자신의 책 <무브 유어 DNA>에서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는 단시간의 급격한 운동 또는 특정 근육을 공략하는 운동을 두고, 식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비타민 보조제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도움은 되겠지만 결코 당신을 정말로 건강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분당의 단기 작업실에서는 글쓰기가 너무 잘 돼서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5평이나 될까 싶은 원룸이지만 단기 작업실은 19평가량의 비교적 넓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만 하루 종일 있어도 동선이 지금 작업실의 몇 배나 되는 데다가 탄천이 좋아서 그래도 꽤 자주 나가 산책을 했었다. 지금도 작업실 앞에 하천이 있지만 탄천처럼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조금만 어두워져도 걷기가 무섭다. 날이 추워지면서 더 산책을 하지 않게 되자 몸과 마음의 상태가 심각해진 것 같다.


처음에는 지금의 작업실을 얻은 후 남편과 너무 많이 싸우게 되고 컨디션도 점점 나빠져서 수맥이 흐르나 싶었는데 급격히 줄어든 움직임이 큰 원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걷기를 포함해 움직임이 뇌에 주는 긍정적인 신호가 줄어든 상황은 모든 것을 손 끝 하나로 해결할 수 있어진 2000년대 후반에 더 심각한 결과를 낳는 중이라고 한다.


2011년 윌리엄 앤 메리대학교의 교육심리학과 교수 김경희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표준 창의력 검사 점수를 비교했다. 놀랍게도 김경희는 2000년대에 이르며 점수가 눈에 띄게 낮아졌음을 발견했다. 점수 하락은 어린이들 가운데서 특히 두드러졌다. 최근에 업데이트된 이 연구는 그 이후 추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김경희는 이런 결과를 시험에 집착하는 현대 교육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혼자 있을 곳을 그렇게 간절히 원했지만 무기력해진 내 모습을 벗어나려면 일단 걷기부터 해야 하는 것일까.


-조금 빠른 속도로 걸어라 : 분당 120보로 걸어라.
-앞으로 가라 : 심리학 연구에서는 정신적으로 공간을 헤치고 앞으로 움직이면 과거가 보다 멀리 느껴진다고 본다.
-생각하려면 방황하라
-중력을 거스르라




문과의 한계인가. 번역서인 데다 뇌과학의 영역이라 그런지 문장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틈만 나면 침대와 한 몸이 되려는 나의 습관에 대해 새롭게 경각심을 가져보는 기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