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때 담임은 여자였다.
그때 삼십대초반정도 되었을테니 아직도 교직에 있겠구나. 지금쯤 교감이라도 되었을라나.
젊고 특히 목소리가 굉장히 청아한 사람이었다.
뭐 그런걸로 유명했던건 아니고 아이들 사이에서 화제였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당시 교사가 임신 중이었는데 한창 입덧중인지 아님 입맛이 당겼는지 시간마다 뭘 먹는걸로 유명했다.
요새 애들은 똑똑해서 뭐먹냐 왜먹냐고 묻기라도 했겠지만 90년대 초입 선생의 권위란 지금과는 달라서 터무니없이 아구창 싸닥션을 날려도 선생님이 그러면 그런가보다 했다.
그때만 해도 용돈도 먹거리도 여전히 흔하질 않아서 담임이 시간마다 먹는 모든 음식이 촌아이들의 군침을 자극했다.
물론 아이를 임신중이었으니 충분히 먹을 수는 있다고는 지금은 생각하지만,그 담임은 참 시시때때로 먹었다. 몸이 그래서 그런지 주로 고향에 흔히 재배하는 과일류긴 했는데 어찌나 달게 아삭바삭 먹는지... 어떤날은 사과를 깍는가 하면 다음날은 뺀질이복숭아를 몇개나 먹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거의 반애들 모두가 그걸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조차 수군수군 댈 무렵에 누구 엄마에게 항의가 들어와서 좀 덜 먹었다나 어쨌다나... 임신한 상태인걸 감안하면 좀 안됐긴한데 진짜 매일 먹었다ㅋㅋ...
아마 반에서 제법 똑똑하고 행세 좀 하던 집 애가 엄마한테 먹고 싶어 죽겠다고 일러바쳤나보다.
명실상부 공교육 교사가 먹는걸로 애들 침이 땅바닥까지 떨어지도록 했다는게 돌이켜보면 좀 어이없기도 하다. 지금 같은 세상이면 항의가 빗발쳤겠지.
내 학교생활에 큰 간섭도 관심도 없던 우리 엄마도 그 담임은 똑똑히 기억하는데, 듣자하니 먹는거로도 유명하거니와 대놓고 엄마입김이 있는 아이와 천지 뭐 암것도 없는 똥꿀레인 나를 차별하는 발언을 하더라고 했다. 나는 셋째다 보니 이미 엄마의 교육열에서는 벗어나 있는 편이라 엄마가 학교에 오거나 뭔가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허나 엄마 성격이 물에 물 같은 나와는 달리 부당한 건 못 참는 사람이라 딱 대놓고 애들을 왜 차별을 하냐고 격하게 깠다고 했다. 재미있게도 담임이 일개 촌부에게 깨갱했다는걸 보면 아름다운 목소리와는 반대로 좀 경솔한 데가 있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다. 새파랗게 젊은 것이 그 지랄을 하더라고 엄마가 아직도 신경질을 내며 그 담임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 후에 봉투라도 줬는지 별달리 나쁜 기억은 없다.
어제가 스승의 날이라 고향 친구에게 문득 그 담임 이야기를 하니 대뜸 사과 깍는 이야기부터 하는거 보면 유명인사가 맞긴 하다.
공교육이나 교사를 깔 목적은 없다. 오히려 나는 교권침체에 우려를 표하는 입장이다.
다만 90년대에는 다소간 암흑스런 교실의 역사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좋은 교사들도 무척 많다. 진짜 선생님,스승님
그런 인생교사를 만나는 아이들이 아직도 부럽다.
어른이 되어서 돌이켜봤을때 사과 깍는 기억으로만 남은 교사로 회자되는 것은 웃기고도 슬픈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