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by 따따따

사진출처: 두산백과


중학교때까지는 고향집에 대추농사를 지었다.
대추는 따는게 아니다.
대추나무 밑에 그냥 맨땅이나 혹은 포장을 크게 깔아놓고 나무를 탈탈 털어 열매가 우글따글 떨어지면 그걸 손으로 골라내고 줍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에선 그때 그렇게 했다. 사람 쓰기는 애매한 양이고 결국 가족 수대로 대추밭에 끌려가 대추 부역을 할 수밖에.

아. 말로는 쉽지만 고작 한고랑 줍고나면 지루하고 힘들고 허리도 아파서 저 망할 햇님이 빨리 떨어져서 집에 좀 가고 싶었다.

낮에는 등에 꽂히는 가을볕이 따가워서 서글프고 저녁나절에는 등이 식는 가을바람에 더 서글펐다.

이놈의 대추나무 제발 좀 안 베어내나. 언제 베어내나. 돈도 안된다면서 왜 안 베어내나.

어느 해는 여섯식구 모두가 대추를 줍는데 갑작스런 가을소나기에 식구수대로 폭삭 젖어서 아버지 경운기 타고 다 함께 탈탈탈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추워서 이가 딱딱 떨렸지만 소나기가 멈춘 시퍼런 구름덩어리 하늘에 걸려있던 어마어마하게 큰 무지개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게 주운 대추는 전기건조기에서 밤낮으로 요란한 소리에 뜨거운 대추냄새를 풍기며 가을이 깊어가는10월말까지 쪼글쪼글 말라갔다.

그때쯤 되면 낮에도 서늘해지고 밤에는 더 이상 창문을 열고 자지 못하며 이불도 제법 두께 있는 차렵이불을 덮어야한다.

건조기가 꺼지면 가을걷이도 거의 끝이 난 것이다.

대추나무를 베어내기 전까지 내게 가을이라는 계절 자체가 마른 대추냄새로 스며있었다.

대추나무 베고 포도 심는다는 말에 얼마나 기뻤던지.야 이제 대추 안주워도 되겠구나.

한그루 남겨놓고 차례나 제사때 부모님이 쓰곤 하는데 고향집 엄마가 올해는 대추가 일찌기 폭 익었으니 얼른 따야겠다 한다.

그 말에 불현듯 빨갛게 마른 대추냄새가 머릿속 콧속 폐의 깊은곳까지 밀려오는 것 같았다.

기쁘지도 않은 옛 기억이지만 불그레하게 떠오르기에 시갓집 간김에 고향집보다 일찍 말린 대추 한주먹을 집어 냄새를 한번 괜시리 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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