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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는 익어가는데

by 따따따

고향집 아버지는 스무바늘을 꿰매는 발가락 부상을 입었다.

잡초를 갈아 엎는 농기계 날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고향 아버지나 시아버지나 촌사람들이라 목숨이 경각에 달리지 않는한 어지간한 상처는 그냥 집에서 나을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거기까진 좋은데 이제 고향집은 과일철이다.

아빠가 일을 빼면 엄마는 또 어쩐단 말인가.

결국은 일철과 겹치니 부은 발을 디디고도 포도를 따는 늙은 아빠와 원래도 아빠보다 더 일을 많이 했던 엄마가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짜증 섞인 노모의 목소리가 술술 나온다. 이맘때가 되면 늘 듣는 짜증이지만 이번엔 난감한 톤의 짜증이다.

박스나 접어주러 가겠다고 하니 흔쾌히 그럴래?한다.

응 그럴게.

애와 남편을 각자 보낼곳에 보내고 나는 하루 알바를 쉬고 고향일을 하러 갔다.

남편과 나는 각자가 고향이 시골이니 서로의 집안 농삿일과 장삿일에 사위랑 며느리가 되어도 서로 부담 갖지 않도록 하자고 약속했었다.

나는 결코 시갓집 고추를 따거나 방앗간 떡시루를 설거지 하지 않았고 남편은 고향집 포도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룰을 지키기 위해서 홀홀단신 나만이 고향으로 뛰어간다.

노인들은 잡다하게 움직이는게 더 힘이 드니 박스를 접고 포도를 나르고 싣고 등등 젊은 내가 잡스런 치다꺼리를 해주니 노인 둘이서는 오후에 끝날일이 오전안에 끝났다.

엄마가 수고했다고 소고기를 구워준다.

가는길에 택시비도 쥐여주는걸 자봉(자원봉사)하러 온건데 집어치우라고 했더니 깔깔 웃는다.

촌사람들은 평생 직장인데다 나중엔 편히 쉴 안식처인 땅이 있어서 참 좋지만 이렇게 힘들게 에누리도 없이 평생 일해야하나 싶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나만 안쓰럽지 남편은 아무 생각 없어보인다.

하긴 나도 시갓집 고추밭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다ㅋㅋ

수고값으로 포도는 몇송이 얻어왔다.

그래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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