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박물관이든 좋아한다.
아주아주 오래전 이땅에서 나와 다름없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빴던 고대인들의 흔적을 보는게 재미있다.
돈 안되는 잡다한 일을 많이 한 나답게 유물을 연구하는 문화재연구원에서도 그림 그리고 토기조각 맞추는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만난 내가 소속 되어있던 부서 팀장님과 친구 한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소중한 인연이다.
둘 다 문화인류학 전공 선후배간으로 전공자들이라 역시 지식이 굉장히 해박한데, 저 옛날 사람들의 흔적에 열광하는 나와 달리 반응이 항상 뜨뜻미지근하며 냉철했다.
뭐 그건 미술전공인 내가 남의 그림에 미적지근한거랑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여하간 나는 지식이나 직업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니까 마냥 재미있었고 지금도 재미있다.
옛날에는 토기 만든 사람들이 남긴 도구흔이나 손흔적을 보면 정말 뭉클했는데 지금은 이 똑같은거 계속 만들면서 때론 굽다가 우그러져 나오기도 하는데 토기장들한테 관리들이 돈은 제대로 쳐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평생 흙을 만져 투박한 손이 떠오르는건 내 양가 부모님들도 그들과 같이 평생 흙에 묻혀 사는 민초들이라서 그런듯하기도 하다.
고분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유물들이야 그 사람들 신분이 대충 그 정도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만큼 꽤 사회적 위치가 있었을테니 나처럼 지식이 없어도 대강은 잘 먹고 잘 살았겠다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선사시대의 못다먹은 저장 도토리나 살다가 버리고 갔는지 도망갔는지 모를 생활토기나 도구들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또 물큰해져온다. 아까운 도토리는 왜 다 못 먹은 것인가. 남겨놓고 어디 갔단 말인가.
경주 월성 발굴지에서 인주(人柱)인신공희의 흔적이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인주라는 것은 어떤 건축물을 세울때 인신공양으로 그 건축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주춧돌밑에 사람을 묻는 형식인데, 내가 이걸 일본 소설 음양사에서 처음 봤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에서 인주 얘길 들은건 월성이 처음인데, 순장도 있었으니 인주도 충분히 있었을만 하다. 게다가 한두명도 아니고 꽤 여러명을 월성벽 아래 곳곳에 심은 것 같았다. 신라 클라쓰...
남편한테 이야기하며 여보 있잖아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인주후보 제일 첫번째 순위로 이미 죽어있었을지도. 하니 흠. 하며 잔뜩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다. 문화인류학 친구에게 그 이야길 하니 야 인주고 뭐고 그전에 수탈당하고 못 먹고 못 입고 후보 되기도 전에 평균수명도 못 채우고 죽고 없어~~한다.
일리 있네.
세월은 켜켜이 쌓여서 여기까지 도착했다.
신라시대엔 코앞까지 들어오던 바닷물이 산 너머로 밀려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는데, 지금에서부터 이천년후엔 뭐가 남을까.
누가 우리의 흔적을 찾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