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화를 배우고 있다.
막 잘하진 못하고 그냥 저냥 한다.
애 따라 다니느라 예전만큼 열심히도 못해서 실력이 팍팍 느는게 눈에 보이는 다른 회원을 보면 아이고 배야 하며 앓아눕고 싶지만 어쩌랴 모두의 사정이 다른걸. 속으로만 시기하고 밖으론 예헷 하고 납작 엎드려야지 뭐.
우리집엔 그림이나 예술 하는 사람이 전혀 없기에 누구도 나를 딱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우리 오빠는 연도 잘 만들고 그림도 곧잘 하고 글씨도 참 잘 썼는데 그냥 맏이답게 공부 열심히 해서 산다. 오빠가 가끔 오빠 분야의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이해 못한다. 이해에 대한 기대는 접어넣자.
그림 선생님은 얘 ㅇㅇ야? 우리가 건강 해칠만큼 그림 열심히는 안하잖아 꾸준히만 하라고 하면서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줄줄이 욕심을 내신다.
나만 하냐니까 얘 나는 이제 늙었어. 옛날에 다 그렸고 내 창작도 하고 싶고 일찌기 본 손주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싶고 밸리도 해야 되고 플루트도 불어야 되고 어쩌고 하며 너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 잘 해보라며 등을 계속 떠민다.
사실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선생님과 노선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긴 하다. 정통 불화를 동경하는 동시에 무속 불화에도 관심이 많다. 언젠가 선생님한테 넌지시 얘기했는데 선생님의 노선은 단호하게 또는 당연하게도 정통파였다. 선생님이 사사한 작고하신 왕선생님께선 그야말로 조각 단청 불화를 통달한 화승의 제자로 불모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 영향도 크신것 같고.
돈 안되는 잡다한 일을 많이 한 나답게 나는 불상 제작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벌써 오래전인데 그때 두루 겪은 정통불 무속불이 지금도 도움이 많이 된다. 선생님과의 첫 인연도 거기서인데 선생님은 이미 불화를 하고 계셨던지라 안 맞다고 나가셨고 나는 3년을 있었다. 그만둔 이유는 크게 공통이다. 오너중 한명이 좀 특이했다. 거기까지. 나하고는 진짜 서로 만나서 드러웠다까지 되어서ㅎㅎ 나오게 되었는데 일 자체는 매우 좋았다. 일하고 사람은 어디까지나 별개다.
석가, 아미타,관음, 대세지, 지장, 존자, 시왕 같은 정통불은 물론이고 산신할아버지, 용왕, 옥황상제, 궁대신, 불사대신,장군신, 글문도사, 동자, 선녀, 도깨비등 무속신을 거기서 많이 알았다. 나는 개취로 어여쁘게 치장하여 예쁜 방울을 쥐여 해당 법당으로 떠나는 궁대신이나 불사대신을 참 좋아했다. 예뻐서 좋았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무속불화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나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는데 그림을 하다 보면 길이 통하여 저절로 열리겠거니 하고 그냥 지금은 나 하던거 야금야금 하고 있다. 갈 길이 매우 멀고 바쁜 것만이 팩트다.
여튼 선생님이 좀 실망하실 수도 있지만 이건 나의 아이덴티티라 어쩔 수가 없는거 같다. 어떻게든 그림으로 벌어서 선생님께 술과 고기로 여흥을 드리고 기운을 북돋아 드리면 될 일이다ㅋㅋ
선생님이 자기 일년신수 보고 난 뒤에 같이 작업실 생각해보자고 진지하게 비즈니스 이야기 했는데, 선생님이나 내 성격상 둘 다 흐지부지일거 같기도 하고..
하여간 뭘 억지로 하지 않는게 나이 들고서 든 좋은 자기절제인것 같다. 좋은 핑계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