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떡을 좋아하는 후배는 곧 화실을 할건데 아직 자료가 부족하다고 낮엔 일하고 밤엔 그림 그린다.
가끔씩 그림을 보내온다. 후배는 시각디자인과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대입시강사를 10년 했는데 그동안 학생들 좋은 대학들 많이 보냈다.
그때는 당연히 직업적으로 그림을 잘 그렸고 결혼하고는 임신출산육아로 학원을 그만 두고 일반 회사 생활을 했다.
나는 생긴건 든든한 남상인데 속은 어찌나 티라미수건만... 후배는 지금도 작고 동그랗고 말랑한 찹쌀떡 같은데 20대 초반부터 젊은 시절 전반을 남초에서 빡센 강사로 보냈던터라 속은 그야말로 사내답다. 딸 둘 키우는데 화 한번을 내지 않고 군대식으로 엄격히 키운다ㅎㅎ
여러가지 너무나 많은 사정으로 이제야 후배도 다시 붓을 들었다. 후배는 소묘와 수채화를 좋아하고 매우 잘했는데 예전 선생님을 다시 뵙고 열심히 손을 풀고 있다.
트렌드도 바뀌었고 몸에 배인 입시미술기를 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역시 그 짬이 어딜 가지 않아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기량을 찾아가는게 눈에 보인다.
나도 소묘와 수채화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너무 안해서 손이 썩은데다 불화하는게 배어서 아예 못하게 되었는데 보내오는 후배 소묘나 수채화의 선을 보면 내가 다 후련하다. 아 이거지 이거다. 너는 이렇게 잘 그렸는데 이걸 그동안 못하고 살았구나.
언젠가 후배에게 돈벌이도 돈벌이지만 나는 이거 그림 꼭 해야 돼. 내내 마르던 목이 불화 선 치면서 마침내 해갈이 좀 되는 기분이었어. 넌 어떠냐 하니까 후배가 자긴 허리디스크로 네발로 기어다니면서도 그림을 그리면 힘든줄 모른다고 했다. 사실 후배는 훨씬 더 큰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대인배 재질인데 환경적으로 그럴수 없었던 이유도 있어서 항상 안타깝지만 아직 로또가 안되서 내가 보태줄 수가 없다.
하지만 40대부터 시작해서 평생을 바라보고 시작하는 일이면 후배는 분명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때는 돈 벌었다고 나 잊지 말고 나중에 작업실 청소라도 좀 시켜달라고 했다.
나처럼 온갖 잡다한 것을 어디에서든 주워 듣고 속닥속닥 물어다나르는걸 좋아하는 동시에 맏이 멘탈로 온갖 대소사를 앞장서서 군말없이 거두는 사람이다. 나는 INFP 후배는 INFJ 내가 나무를 보면 후배는 숲을 보는 매우 치밀하며 다 계획이 있는 사람이다.
내 밑바닥 감정에서 리치한 감정까지 가장 진실에 가깝게 전달할 수 있는 편견 없는 사람인 후배가 항상 고맙고 존경스럽다. 사실은 나랑 동갑인데 내가 빠른 년도 입학이라 고등 선후배간이다. 이제 그냥 반말하자니까 언니 내가 말 놓으면 바로 선 넘을건데 감당할 자신 있냐고 걍 두란다ㅋㅋ 운전 안하는 이유가 사람 치고도 그냥 갈 거 같아서 자신의 도덕성을 의심하던 후배는 지금 바르게 룰 잘 지키며 운전도 잘하고 다닌다. 다만 후배가 운전하는 차는 조수석엔 무서워서 못 앉는다는 단점이..
후배 이름은 영미다. 컬링의 영미선수랑 똑같은 이름이다. 내 세대엔 흔한 이름이다. 영미가 화실 열면 나도 수채화를 다시 배우고 싶다. 불화도 배경 그릴때는 회화전공한 사람이 대단히 유리하다. 그림 배우고 싶단 사람 다 영미 화실로 몰아줘야겠다. 입시출신이라 자긴 주입식에 특화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거엔 전혀 거부감 없단다. 몸에 좋은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영미는 몸에 좋은 것 많이 먹고 돈 많이 벌어야 된다. 그래야 나도 노년에 작업실 청소일 찜해놓을 수 있다. 올해가 가기전에 바쁜 영미가 아주 좋아하는 스타벅스의 미친 비누냄새 나는 짜이티를 사주며 연말의 소회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