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리다
학원에 오후쯤 되면 유치원생들이 오글오글 몰려온다.
전부 여자애들인데 어딜가나 여자들은 셋이상 모이면 이간질하기 바쁘다.여자들이 그런건지 인간군상이 원래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여튼간에 요것들도 서로 돌리고 돌리며 울고 웃기를 매일 반복한다.
성인인 내 눈에는 그 주동자가 훤히 보이는데 이 작은 여자들은 알리가 있나. 그 주동자는 귓속말로 유한 아이들을 이간질하고 현혹하며 조종하는데 대단히 능숙해서 늘 대장질을 한다.
어제는 그 주동자가 자기만 쏙 빼고 마이쭈를 안줬다며 개중에 가장 순한 것이 울음을 터트렸다.
아,저 어리석고 순진한 것.오늘도 너니.
순진한 아이들도 이게 성향들이 다 달라서 주동자에게 만만한 상대라는 건 따로 있다.
이 순한 것이 그런 상대였는데 나는 이미 그런 상황을 여러번을 보아왔다.그 순한 것은 영문을 모른다 도무지..
그렇다고 주동자를 몰아부칠 입장은 내가 또 못되고.어디까지나 나는 을중의 을이니까.
학원강사라는건 그저 하루살이나 다름없는 걸.
나도 어릴때 따돌림을 당하거나 꼬봉질을 꽤나 했다. 동네에 나보다 두살이나 많은데다 또래보다 발육이 월등히 좋은 애가 있었는데,어릴땐 언냐언냐하며 따라다니다가 호적상으론 또래라 유치원부터 함께 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방한 촌것들이라 잘 어울려다녔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상황이 변했다. 덩치 큰 애들이 확실히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는데,가뜩이나 가라앉은 분위기의 집에서 자라 내성적이고 자존감 낮은 나다보니 말도 못하고 눈물을 꾹 참으며 그 아이들이 주던 모욕을 견뎠던 기억이 안타까울 정도로 생생하다.
특히 동네 그 두살 위의 동기에게 꼼짝없이 목이 잡혀 끌려다녔는데,대신 가방도 들고 신발도 꺼내서 놔주고 아예 걔는 나를 '비서'라 부를 지경이었다. 사실 뭐 잘 놀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그렇다.놀다가 괴롭히다가 또 논다. 그리고 걔가 있는 한 다른 친구를 사귈 필요는 없었다. 그럴 수도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당시엔 친구도 없었고 딱히 인기있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저 대강 겉돌았지 싶다.
놀랍게도 그 관계는 중학교때까지 이어졌다.
촌이다보니 초등학교 동기들이 중학교까지 그대로 같이 갔기 때문이었다.
중학교때는 나도 나름의 관계가 생기고 자아가 생기면서 초등학교때보단 나았지만,나는 늘 빨리 대처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고픈 생각밖에 없었다.
순수했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프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은 없다.
이렇다 할 친구도 없었고,젊었던 부모님은 사느라 바쁘고..그땐 지금과는 사람들의 마인드나 사고가 다른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의 울타리를 바랄 입장도 아니었다.
담임선생들 이름까지 다 기억하는데 좋은 기억은 거의 없다. 1학년때 빼고는 무섭거나 뺨맞거나
풀 뽑고 벌서고 맞고 이런 치욕스런 기억 뿐이네.체벌의 시대였던 탓도 있고 존재감이 없긴 없었다.
초등학교 6년 그 행복해야 할 시절이 정말 힘겹고 울적했기에,그 상황을 어떻게든 건너와서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성인이 된 지금의 내가 훨씬 만족스럽다.
어른이 되었다기보다는 어떻게든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끔 안도할 때가 있다.
그 두살위의 동기는 고등학교도 함께 진학하긴 했지만,진로도 달랐던데다 친구관계도 달라져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사회 나와서는 그 동기가 오랜 기간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는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는데,나중에 만날 기회가 몇번 있어 몸 괜찮으냐 물었더니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로 죽다살았다며 어릴때 내가 너나 다른 아이들을 너무 괴롭혀서 벌받나보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류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감동 같은건 없었지만..
난 이미 그즈음은 많진 않아도 마음 나눌 따뜻한 관계들로 인해 오랜 시절의 일 따위는 지우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지웠다기보다는 그냥 저절로 잊혀졌다. 극히 심드렁하게 난 이미 다 잊고 기억도 안난다고 그깟거 생각 말고 잘 나으라 했다.
아 쿨하다.ㅋㅋ
그 순한 것을 보니 문득 기억이 떠올라 써본다.
주동자의 영악한 성격을 주변 학부모도 모르지않았다. 그 순한 것의 엄마도 잘 알고 있으며 마이쭈이야기도 들었지만,워낙 성격 좋고 유한분이라 아이 스스로가 잘 이겨내야지 어쩌겠냐며 그냥 웃더라고 원장이 이야기해주었다.
그래 타고난 성격이 순한 것을 어쩌리..
나중에 초등학교 가서는 걔랑 놀지말어라.ㅋ
여긴 도시니까 더 새롭고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귈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 영악한 주동자도 세상 풍파에 맞서보면 자기가 세상의 왕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지.
성격은 잘 안바뀔거야 아마...못된× ㅎ
그래서 오늘은 마이쭈와 초콜렛을 내 돈 털어 사서 모두에게 듬뿍 나누어주었다.
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